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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s

ある男 (한 남자) by 平野啓一郎 (히라노 게이치로)

by FarEastReader 2022.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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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작가는 익히 알고 있었다. 미남, 엘리트 작가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리고 문학으로 성공해서 돈도 많이 벌고, 미인 모델과 결혼한 것도 어디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면서, "음 역시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은 이렇게 성공할 수 있는 거로군", 하면서 감탄하였다. 나는 이전에도 한 번 히라노 게이치로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었다 '책을 읽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本の読み方'라는 책이었다. 급하게 책을 다독하지 말고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라고 하는 그의 '슬로우 리딩'이라는 조언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 이후 특히 문학작품을 읽을 때에는 이 방법을 적극 이용하곤 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소개로 읽게 되었다. 나는 책 추천 받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가끔 이런 추천을 통해서 내가 혼자 서점에서 책을 골랐더라면 절대로 만나지 못했을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한 남자라는 소설 또한 내게 그렇게 만나게 되어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이었다.

살아가면서 나 자신, 즉 스스로에 대해 실망하거나 좌절해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의 존재 자체에 대해 열등감이나 좌절감을 느끼고 모든 걸 다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스스로에 대해 감추고 싶은 점을 안고 살아가 본 적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런 열등감이나 내면의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솔직히 내 스스로도 이미 수차례 내 자신에 대해 실망을 경험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소설을 만났기에, 훨씬 뜻깊은 독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소설이다. 특히 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선천적인 것들과 주위 환경이 과연 그 사람을 규정하는 족쇄가 될 수 있는가를 아프게 묻는다. 물론 이를 무조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이 어쩔 수 없이 미치는 강력한 힘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끊어내고 그토록 원하는 평범한 행복을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의 서툴지만 눈물겨운 몸짓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정형시를 혹시 좋아하는가? 시조나 하이쿠, 소네트 같은 정형시 말이다. 이 '한 남자'라는 소설 속에서 주인공과 주요 인물이 꼭 정형시와 같은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주어진 틀 안에서 자기에게 가능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혈통과 가계,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출발선의 차이, 그러나 그 안에서도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기어이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사람과 교류를 하고, 주어진 삶이 가져다 주는 기회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에게 가능한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려 하낟. 그 안에서 누군가는 결국 스스로의 깨지기쉽지만 행복한 삶을 지켜내고, 누군가는 실패를 한다. 누군가는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누군가는 아쉬운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사랑을 운운하면 거의 거짓말쟁이가 되는 느낌이 든다. 각종 서열화와 손익계산, 치열한 생존경쟁과 상처 주기 속에서 연애는 그저 또다른 형태의 비지니스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어쩌면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이 소설에서는 사랑을 이야기 한다. 여전히 우리는 인간으로서 매력적인 이성에 본능적으로 끌리고, 때로는 경박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이 사랑과 욕망을 우리 삶에 녹여내고자 한다. 그리고 결국 진짜 행복은 이러한 사랑이 어떤 식으로든 그 개인의 삶에서 승화되었을 때 힘겹게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이 소설은 전해 준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같이 사랑하고 결국 몸 까지 섞게 되는 이유, 그리고 때로는 그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고 거리를 두는 이유...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이 소설은 재미있는 의견을 들려준다. 이 또한 우리를 정의하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맞닿아 있다. 우리는 결국, 스스로를 정의하기 위해, 아니 스스로를 정당화 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도와는 달리 전개 되는게 인생이고, 또 연애의 행방이지만 말이다.

이 소설은 또한 매우 지적인 소설이다. 한없이 가볍고 바보같은 이야기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간만에 성숙한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고 반추하는 이야기를 읽으니 무척 기뻤다. 그리고 이 생각들이 폐쇄적이고 답도 없는 82년생 김지영류의 피해망상이나 조현병이나 우울증 걸린 아티스트 지망생의 잡생각이 아니라, 상당히 실용적이고 또 내 삶과 일상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본질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들이라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 소설을 풀어가는 주요 인물들의 연령은 만으로 38세에서 43세 정도인데, 이는 1975년생 작가가 2011년~2012년을 배경으로 쓴 글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결국 본인 세대의 이야기를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연령대를 묘사함에 있어서, 상당히 '중년의 초입' 이라는 분위기를 의식하며 인물들을 그려 나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지금 2020년대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만 39세~43세 사람들을 많이 접하지만, 이들이 그렇게까지 전통적 의미의 중년에 가깝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이 점은 몰입이 좀 어려웠다. 일본도 이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인데, 어쩌면 이 점에서 인물들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숙하고, 어른스럽다는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미국의 소설들을 즐겨 읽는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유치하지 않고, 인물들이 매우 뚜렷하고 성숙하기 때문이다. 일본 소설은 다소 경박하다는 느낌을 받거나, 주인공들이 너무 미쳐있는 경우가 많아서 부담스럽거나 지나치게 허구적,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고, 한국 소설은 주인공들이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완전히 유리된 부적응자들의 느낌이 강해서 좀 불편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점에서 확실히 스탠스가 달랐다. 정말 우리 사회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 뜻밖의 아주 흥미로운 사건에 휘말리지만 이를 또 평범하고 상식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이 점이 나는 정말 좋았다. 한국 소설 중에 깨지기쉬운 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그 소설을 훨씬 진지하게 쓰고 문학적으로 완성도 높게 만든다면 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한 남자'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모두가 유튜브로 음악을 듣고, 또 모두가 한 층 즉물적, 속물적이 된 지금, 어쩌면 우리 삶을 한 번 다시 과거의 스타일로 반추해 보면 어떨까. 우리의 기술이 진보되어 나아갈 수록, 우리의 육체, 우리의 정체성, 그리고 우리 자신이 도대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돌이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간만에 다시 도스토예프스키가 읽고 싶어진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삶을 좀 더 소중히 하고 싶어진다. 이 소설은 분명, 좋은 소설이다.

한 남자 by 히라노 게이치로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연말 연휴 기간에 읽어서 후회 없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화도 되어 있다고 하니, 소설을 다 읽고 영화를 보는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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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마존 킨들을 통해 원서로 읽었다.

ある男 by 平野啓一郎 일본어 원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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