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문제 - 즉, 중국과 대만의 갈등에 대한 문제- 는 현재 내가 가장 관심있어하는 지정학 이슈다. 가까운 미래 미중 패권전쟁의 핵심 주전장이 바로 대만이 될 수 있고, 이건 당연히 대만과 중국, 미국과 중국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고, 동아시아의 한반도, 일본열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정학을 다룬 여러 대중 서적에서 전문가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주요 지정학적 문제로 중국과 대만의 양안문제와 함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또는 NATO로 상징되는 서방) 문제가 있었다. 이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또는 NATO)와의 관계는 장기적 전면 전쟁이라는 양상으로 터져 나온 만큼, 이 중국과 대만의 문제 또한 지금처럼 휴화산인채로 멈추어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또한 너무나 나이브한 인식이 아닐까 싶다.
뤼슈롄 전 대만 부총통이 쓴 이 책은, 대만-중국간의 갈등의 핵심은 물론 대만의 독특한 정체성과 함께 대만의 정치상황을 이해하는데에도 큰 도움을 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만-한국-일본를 중심으로 나아가 필리핀, 호주, 캐나다까지 확장되어 이어지는 동아시아 자유민주주의 해양세력의 연대를 이루어 중국 공산당에 대항하자고 하는 강력한 합종연횡의 제안을 던진다는 점에서 무척 도전적이기도 하다.
먼저 대만이 (마치 조선, 일본, 베트남처럼) 중국과 완전 독립된 국가라는인식과 주장이 매우 흥미로웠다. 문화적, 혈통적으로는 한족(漢族) 중심의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고 대만 원주민이라 하더라도 대륙 출신 인구가 거의 전부일 것으로 보이는 대만이지만, 사실 대만 사람들은 스스로가 중국의 일부라는 인식이 역사적으로 희박했다고 한다. 대륙에서도 대만은 중국/중화라는 추상적 개념의 일부라기 보다는 중국 왕조가 점령하고 지배하고 있는 영토라는 인식이 강했고, 심지어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이 난징에서 건국될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중화민국이 중공에게 져서 장개석이 대만으로 이전해 오면서 중국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이며 수복과 통일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탄생했고, 공산당또한 마찬가지로 국민당의 잔당이 강제 점령한 중국의 일부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국민당과 그 지지자들이 아니라면, 중국계 주민이라 하더라도 모든 대만인이 중국대륙과 통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 것도 아니고,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생각도 희박하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사정을 몰랐기에 매우 놀랐으며, 이러한 사실의 새로운 인식으로 인해 양안문제가 단순한 통일문제나 체제경쟁이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양안 문제는 일부 대만인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독립운동이며, 양안문제의 인식을 둘러싸고 대만 내부에서 국민당과 민진당이 그렇게 첨예하게 다투는 것의 이유를 처음 알았다. 즉, 처음부터 대만인 전부가 애초에 '하나의 중국' 이라는 표현 자체에 동의를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양안문제는 소련 붕괴 후, 미국과 중국이 협력할 유인을 잃고 중국의 굴기로 인해 미중 패권전쟁이 본격화 되면서 한 층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시진핑과 중공은 집권 정당화를 위해 대만 통일을 국시로 내걸었고, 특히 반도체 전쟁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대만의 반도체회사 TSMC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면서 엄청나게 강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대만에서도 차이잉원 총통과 같은 강력한 반중,친미-친일 리더가 등장하며 대립은 더욱 격화 되었다.
저자 뤼슈롄 전 부총통은 기본적으로 차이잉원 현 총통과 같이 대만독립주의자이자, 대만과 중국을 '하나의 중국'으로 묶는 레토릭을 거부하는 입장이기는 하나, 차이잉원 총통과 달리 미국에도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뤼슈롄은 미국 역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 대만을 내칠 수 있으며 실제 그 역사를 보지 않았느냐고 지적한다. 그렇다 대만은 미중 밀월기간 이후 미중 정식 수교와 함께 거의 모든 국가와 단교를 당하고, UN상임이사국 자리에서도 쫓겨나 이를 중공으로 대체 당한 과거가 있다. 그렇기에 그녀(뤼슈롄 전 총통)은 다른 길을 더욱 힘주어 제시한다. 바로 태평양 지역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이다.
대만, 한국, 일본은 각각 과학기술과 경제면, 그리고 군사면에서 큰 실력을 갖춘 나라들이나 각각은 중공과 대항할 힘이 없다. 그러나 셋이 연대해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맺고 활용한다면 중공도 감히 어쩔 수 없는 세력이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저자의 주장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흥미롭지만, 과연 어떤 리더십과 상황 이 셋을 하나로 만들 것인가? 저자는 각 국가의 소프트파워와 성숙된 시민사회가 이를 가능케 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이야기 하나, 저자가 책에서 대만의 코로나 방역에서 보여 준 사회의 수준, 대만의 반도체 기술등의 과학 기술면에서의 실력 등을 활용해서 이러한 것을 소프트파워로 삼아 동북아 자유진영 국가의 연대를 이끌어 나가자고 했을 때는 나조차도 헛웃음이 나왔다.
대만은 분명 매력적이고 강한 잠재력을 지닌 국가(또는 지역) 이지만 결코 한국이나 일본을 뭉치게 할 역량과 리더십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한국과 일본이 그 과업을 수행할수 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중공이 목숨걸고 미국과 싸우며 아시아에서 한-일, 그리고 대만 내부, 또 한국-대만-일본간의 분열과 이간을 획책해 나간다면 과연 이 세 나라가 제대로 연합 할 수 있을까 하는 오싹함마저 들었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의 '100년 후(Next 100 Years)'가 떠올랐다. 세상은 분명히 큰 틀에서는 지정학적 필연에 따라 갈등과 충돌을 일으키며 변하고 있다. 과연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될까. 코로나와 중국의 굴기가 정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뤼슈롄 전 부총통 관련 해서 조선일보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기에 링크를 공유한다. 저자의 사상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분은 읽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china/2021/10/28/BXTDA22JFFDGPK7YMFFSUDTV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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