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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s

호암자전 by 이병철

by FarEastReader 2023.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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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으로 살면서 가장 기쁠 때는 한국어로 된 훌륭한 책을 읽을 때이다. 이번에 읽은 호암자전은 2020년대 들어서 읽은 모든 책 중에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책 중에 하나였다. 이 정도로 흥미롭게 읽은 책을 또 하나 굳이 꼽자면 마리오 푸조 (Mario Puzo)의 The Godfather (대부) 소설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얼마전 방영된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계기가 되었다. 드라마 자체는 유튜브에 올라온 몰아보기 콘텐츠로 주마간산 식으로 보았지만, 나 역시 배우 이성민씨가 연기한 순양그룹의 진양철 회장이라는 인물에는 깊이 매료 되었다. 그리고 이 진양철 회장의 모델이 된 사람이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서점에 가서 충동적으로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인 이 '호암자전(湖巖自傳)'을 구입하였다.

해방 후 우리 나라의 산업을 일으킨 거인들의 이야기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또 교훈으로 넘친다. 일본에 전국시대가 있고, 중국에 초한지와 삼국지가 있다면, 해방 후 대한민국의 재벌사 또한 그 수준으로 재미있고 복잡하고 입체적인 영웅들이 다수 등장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최대 거인이라 할 수 있는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에 대해서는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고,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다. 이들의 그림자와 실패에서도 배울 것이 많고,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이들이 결코 일본의 전국시대 영웅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등)이나, 중국 역사상의 영웅 호걸 들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 개성과 매력, 그리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본다. 또한 이들의 성취는 국경을 넘어 글로벌한 것이고,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없었던 파괴된 해방 및 한국전쟁 후의 최빈국 대한민국에서 이루어 낸 것임을 고려할 때, 훨씬 가슴 뛰고 거대한 성취라고 생각한다.

이 호암자전은 이병철이라는 한 개인이 어떻게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실패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상당히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자신의 성공담을 늘어 놓은 것이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과 취향에 대해서도 소상히 기록해 놓은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이 호암자전은 문체가 단정하고 간결해서 매우 멋이 있는데 이 문장과 함께 호암 이병철 회장의 미적 감각과 취향, 그리고 인생관을 함께 나란히 두어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귀하고 세련된 안목을 가진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실컷 놀아보기도 하고 여유와 풍류를 아는 이병철 회장이라는 인간에 대해 큰 부러움과 함께 존경심이 생겼다. 인생 한 번 참 제대로 살다 가셨구나, 라는 순수한 부러움과 그 경험의 크기에 압도되어 생기는 존경이었다.

삼성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정치 권력과 타협도 하고, 이들에게 특혜를 받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들에 의해 기업이나 사업권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일화들을 보며 나름대로 우리나라도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사이에서 서로 견제를 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권력자와 재벌간의 사리사욕 다툼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이러한 경쟁관계가 있었기에 그나마 나름의 check and balance가 기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삼성이 예전에 시중은행의 주식을 대부분 가지고 지배하고 있었다던지, 아니면 여러 초법적인 방법으로 거의 국가 경제 계획 자체에 관여하며 다음 사업을 구상했다던지 하는 이야기가 이 자서전에도 나오는데, 만약 이러한 특권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정말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을 것 같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호암의 자서전에는 이승만이나 박정희 대통령, 또는 맥아더 장군과 같은 정치의 거물들에 대한 직접적 칭찬이나 감탄은 기술되어 있지만, 같은 시대를 살았던 라이벌 경제인 (예를 들어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나, LG의 구인회 회장)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라이벌 의식의 발로인지, 아니면 정말 이병철씨는 재계에서는 본인에 맞설 동급의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했던 건지 궁금했다. 일본의 기업가들에 대한 존경의식을 좀 찾아 볼 수 있는 편인데, 같은 한국의 기업가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평이 없는 것이 참 흥미롭기도 하고, 또 아쉽기도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책은 정말 마리오 푸조의 소설 대부 (The Godfather) 만큼이나 흥미로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경제 활동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조직과 사업을 통해 성공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대부와 함께 이 호암자전을 읽어 보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고 다시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 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데 나는 결국 이렇게 평범하게 인생을 보내야만 하는 걸까 하는 쓸쓸함이 밀려 온다. 너무나 짧은 인생인데, 너무나 빠르게만 지나가 버린 것 같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가슴을 뜨겁게 해 보자고 다짐해 본다. 이 호암 이병철 회장 만큼은 못한다고 할지라도, 스스로가 되돌아 보게 될 자신만의 자전(自傳)을 생각하며 지금부터라도 조금 더 인생을 부끄럽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마음을 다잡아 본다.

 

세상엔 정말 멋진 사람들이 많다. 다만 눈과 귀를 닫고 답답하게만 살면 남의 장점이 아닌 단점만 보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호암자전을 천천히 읽었던 시간은, 역사책과 전기 문학을 통해 호암과 같은 큰 일을 이루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보고, 깊은 질문을 던지는 문학 작품들을 좀 더 진지하게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귀한 독서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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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자전:삼성 창업자 호암 이병철 자서전, 나남, 이병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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