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위대한 작가, 지적인 작가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이청준의 소설은 서편제의 원작이라는 '남도이야기'의 일부와, 중편소설 '눈길' 뿐이었다. 이들 소설에서는 별 감동을 얻지 못했는데, 이번에 읽은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는 정말 오랜만에 진한 명작의 감동과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 마을에 조백헌 대령이라는 새로운 현역 군의관 출신의 조백헌 원장이 부임해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센병 환자들은 이 새로운 원장의 선의와 열의에 냉소와 침묵, 그리고 뭔가 수상하고 음울한 복종으로만 대응한다. 원장은 병원은 물론 섬 전체를 활기차고 밝은 곳으로 바꾸려고 한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행 시키기 위해 선의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간다.
하지만 섬은 생각보다 복잡한 곳이었다. 일제시대였던 1919년 개원한 이 병원의 4대 원장으로 부임한 일본인 주정수 원장에 대한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섬 사람들은 섬의 개발과 발전을 통한 밝은 미래를 신뢰하지 않는다. 주정수 원장과 그의 심복 사토가 행했던 섬의 획기적인 개발과 발전은 결국 주정수 원장 개인의 동상(銅像)의 건립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섬의 환자들에게 고통과 억압, 그리고 굴욕으로 이어졌음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백헌 원장은 몸의 병 뿐만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앓고 있는 이곳 섬에서 새로운 개혁을 실시하고 섬을 바꾸어 나가려고 한다. 조백헌 원장의 방식은 유신시대와 신군부 정권 내내 우리 나라에서 시행되어 왔던 국가개조운동과도 매우 닮아 있다. 그러나 조백헌 원장은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의 방식은 기본적으로 선의에 근거하고 있었다. 그는 그 스스로가 동상을 세우려는 욕망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 철저히 스스로를 반성한다. 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서 조백헌 원장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을 제기하는 보건 과장 이상욱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섬 사람들의 심리와 상처 또한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뿐만 아니라 섬의 한센병 환자들의 화신이자, 대표인 황희백 노인의 한(恨)과 슬픔, 그리고 절망과 분노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조백헌 원장을 응원했다. 그의 방식이 완벽할 순 없어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욱의 계속된 비판과 섬사람들의 무기력함과 비협조적인 태도는 계속하여 찝찝함을 남겼다. 도대체 왜 이들은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거부하고, 그것을 '당신들의 천국'이라고 부르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 소설은 비교적 확실하고 또 매우 깊은 고민을 담긴 답을 제시한다. 제 아무리 옳고 현실적으로 타당한 것이라고 해도, 그 결정이 권력의 강요에 의해 주어진 것이고, 당사자들이 그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면, 그 당사자들은 '자유'를 희구하는 '인간이기에' 그 결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 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인간은 그 압제가 스스로를 위한 것이고, 선의에 기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그 압제에는 저항하고자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권력은 부패하기에 그 압제 자체가 실제로 당사자들을 매우 안좋은 방식으로 억압하고,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묵살하는 식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이러한 경험은 이를 당하는 당사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그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더더욱 그 어떤 압제도 믿을 수 없게 되고, 또 그 압제의 선의를 확인한다 하더라도, 심지어 그 압제에서 사랑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진심으로는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이 제시하는 고민과 이 고민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 그리고 이 고민을 제시하는 인물들의 갈등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때로 너무나 쉽게 지배자의 독선을 긍정한다. 그것은 우리가 약해서일수도 있고, 지배자가 갖춘 덕성과 실력이 실제로 너무나 훌륭하기에 기분은 나쁘지만 그래도 그를 동경하고 따를 수 밖에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독선을 긍정하고 나면, 다시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지배자는 언제나 지배하려 하고, 피지배자는 언제나 눌려야만 하는 관계가 형성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서는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베푸는 일방적인 자애는 있을 수 있어도, 상호 신뢰와 진정한 협력은 결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인간 역사는 계속해서 그러한 실패를 목격해 왔다. 그리고 결국 서로가 반목하며 무엇을 하려고 해도 서로 믿지 못하는 파괴적인 관계로 치닫는 것을 경험해 왔다.
저자는 마지막에 인물들의 극적인 화해를 모색하는 작은 실마리를 훌륭하게 제공한다. 조백헌 원장이 다시 섬에 돌아와 시작하게 된 취미생활이자 예술인 '나무 뿌리를 불로 지져 그슬리기'를 통해서 그가 베풀었던 노력은 결국 그의 새로운 취미생활 처럼 '아름다울 수 있지만 일방적이기에 병적인 무언가'였음을 묘사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조금 더 화해 하고, 세대가 지나며 과거의 상처를 딛고 앞으로 나가는 씨앗을 뿌려 나가는 모습에서는, 깊은 긍정 함께 느리지만 분명한 인류 사회의 진보에 대한 굳은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이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소설의 귀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조백헌 원장과 비슷한 도전을 하고 있었던 가운데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며 고민하고 있었기에 이 소설이 더욱 뜻깊게 다가왔다. 인간은 함부로 조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때로는 조백헌 원장의 방식도 필요하고, 심지어 주정수 원장의 방식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고, 과거의 실수를 참고하여 더 나은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조백헌 원장이 더 나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고, 또 섬에 다시 돌아와서는 일방적 관계가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섬의 개선을 모색해 나가는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주정수 원장의 실패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이상욱 및 황희백의 경고와 비판을 받아들이며 조백헌 자신의 실패고 겸허히 되돌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 지점에서 많은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결국 어떻게 해서든 치열하게 스스로를 반성하며 지금 이순간에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항상 타자를 더 이해하려고 하고, 더 진실한 것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인간적인 고귀함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살아 남는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서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려 하고, 더 아름답게 행동하고자 하는 것만이 희망과 숭고함을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정말 기립 박수를 보내고 싶은 멋진 작품이다.
(2018. 9. 2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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