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읽었던 중국의 추리소설작가 쯔진천(紫金陳)의 '무증거범죄(无证之罪)'라는 작품이 사실 작가 쯔진천이 이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큰 감명을 받고 쓴 일종의 오마주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바로 이 용의자X의 헌신을 Kindle을 통해 구매해 읽어보기로 했다.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지만, 이 책의 첫 몇 페이지를 읽은 후 나는 이 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몇 페이지의 묘사만으로 이 책의 인물과 사건에 정말로 마법처럼 빨려 들어간 것이다.
참고:
2023.11.26 - [Book Reviews] - 무증거범죄 by 쯔진천 (최정숙 역)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쟁점이 되는 살인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살인 사건을 은폐하고, 또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주인공과 주인공 주변의 인물이 느끼는 감정의 묘사가 탁월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소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피할 수 없는 재난'과도 유사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살인 '사건' 이라기 보다는, 자연재해나 경제위기와 같은 사건과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드러내는 감정과, 대처방식이 정말 흥미롭다.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뜻밖의 일이 일어나고 나서야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되고, 또 타인과도 좀 더 특별한 방식으로 교류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없이 아쉽고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시가미(石神)와 하나오카 야스코(花岡靖子)는 과연 '특별한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이시가미의 깊은 사랑과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 평범함과 초라함 속에서 찾아낸 '작지만 소중한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는 과연 전해 질 수 있었을까? 같은 맥락에서, 그 살인 사건이 없었다면 쿠도(工藤) 역시 하나오카 야스코에게 다시 접근할 명분과 용기를 찾아 낼 수 있었을까? 이런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살인사건이라는 터무니 없는 사건이 있었어야만 표면화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참 아쉽다. 만약 이 일이 없었다면, 이시가미는 그저 조용한 옆집 사람으로 아무런 의미 없이 존재했을 것이고, 쿠도 역시 과거의 인연으로만 남아 나이만 먹어 갔을 것이다. 특히 로맨틱한 관계에 있어서 한 살 한 살이 낭비되는 것도, 생각보다 짧은 사람의 일생을 생각하면 그저 참 허무한 일이다.
"이 소설의 숨겨진 교훈은 어쩌면,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보라는 것에 있지 않을까요?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지 말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이 어쩌면 지금은 묻혀버려 질식 직전인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찾아 낼 수도 있는 거니까요."
이 소설을 비슷한 시기에 같이 읽은 사람에게, 반 농담삼아 그렇게 이야기 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을 모두 파악해 낸 이 추리소설의 해결사 유카와(湯川)의 선택 역시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 - 그 진실에 관련된 사람이 폭로 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말 타협의 여지 없는 선택이었을까? 진실만이 정말로 옳고, 관련된 모든 이를 궁극적으로 좋은 길로 이끌어 주는 유일한 방법이었을까? 이 질문이 소설의 마지막까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사실에 대한 집요한 추구와, 은폐되어 있는 진실에 대하여, 그 사실과 관련된 모든 이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 주는 것은 때로 정말 가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때로 사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영원한 사랑, 완벽한 지도자, 선량한 빈자... 눈 앞의 친구가 내일이면 적이 될 수도 있고, 존경하고 의지하는 성직자가 사실은 변태일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굳이 파헤쳐 보려고 하지 않는다. 종교도 큰 틀에서 그런 점에서 유사하다. 간절한 기도를 올리며 도와달라고 빌 때에 우리는 그 기도를 아무도 듣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다. 국가나 민족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국가와 민족에 대해 맹목적인 희생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 국가나 민족이 허구일 수도 있고, 사실은 더 나아가 나쁜 짓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보려 하지 않는다. "응? 나쁜 놈 (villan)이 우리였어?" 라는 것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없다.
이 책은 스토리와 트릭 자체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매우 재미있고, 훌륭한 추리소설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위와 같은 재미있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도 매우 즐거운 독서경험을 제공해 준다. 간만에 아주 재미있고 뜻깊은 작품을 만나서 기쁘다. 가끔 픽션을 읽다가 이런 작품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 픽션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만큼 훌륭한 대답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쩌면 픽션 - 소설 -을 읽는다는 것은, 이 '픽션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가장 예술적인 대답을 감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Kindle로 일본어 원서를 읽었다. 국내에도 이미 번역되어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위 독서감상문은 아래에 일본어로 쓴 글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임)
이 리뷰를 읽고 책을 읽고 싶어진 사람이 있다면 아래 링크를 활용해 주기 바란다.
(쿠팡 파트너스 활동 일환으로, 아래 링크로 책을 사면 이 글의 작성자에게도 몇백원 지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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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の推理小説家、紫金陳(ズージンチェン)の「無証之罪」という作品を以前読んだことがある。その作品が実は紫金陳が「容疑者Xの献身」を読んで大きな感銘を受け、そのオマージュとして書かれたものだと知った後、すぐにKindleを通じて「容疑者Xの献身」を購入し読むことにした。最初はあまり期待していなかったが、この本の最初の数ページを読んだ後、私はこの本の世界に完全に引き込まれた。たった数ページの描写で、この本の登場人物と事件にまるで魔法にかかったように吸い込まれたのだ。
この小説の最大の長所は、問題となる殺人事件そのものよりも、その殺人事件を隠蔽し、また捜査を受ける過程で主人公と主人公の周りの人物が感じる感情の描写が卓越している点だと思う。ある意味で、この小説で起こった殺人事件は「避けられない災害」とも似ている。ある意味では、殺人「事件」というより、自然災害や経済危機のような出来事と変わらない。しかし、その殺人事件をめぐり、それに対処する過程で多くの人々が見せる感情や、対処方法が本当に興味深い。やはり、何もしなければ何も起こらない。意外なことが起こって初めて、人は自分がどのような人物かをよりよく知り、また他人ともより特別な方法で交流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私はこれが面白いと思いつつも、また限りなく残念で悲しいことだと思う。
もし殺人事件が起こらなければ、石神と花岡靖子は本当に「特別な関係」になれたのだろうか?石神の深い愛と純粋な美への憧れ、平凡さと貧しさの中で見出した「小さいが貴重な生きていることの意味」は本当に伝えられたのだろうか?同じ文脈で、その殺人事件がなければ、工藤も花岡靖子に再び接近する口実と勇気を見つけ出すことができたのだろうか?こんなに人と人との関係が、理不尽な事件があって初めて明らかになるというのは、とても残念だ。もしこの出来事がなかったら、石神はただ静かな隣人として何の意味もなく存在し、工藤も過去の縁でしかなく、年を取るだけだったろう。特にロマンチックな関係において、一歳一歳が無駄になることも、人生が思ったより短いことを考えると、ただ非常に虚しいことだ。
「この小説の隠された教訓は、もしかしたら、大変な出来事が起こる前に、普段から周りの人々にもっと近づき、互いの心を確かめ合うことの勧めにあるのかもしれませんね。迷惑をかけると思わず、互いに頼り合うことが、今は埋もれて窒息しかけている人間関係の可能性を見出すことができるかもしれないからです。」
この小説を同じ時期に読んだ人に、半分冗談でそう話してみた。
そして、事件のトリックを見破り、真相をすべて把握したこの推理小説の解決者である湯川の選択も多くの考察を促す。真実を明らかにすべきだという考え - その真実に関連する人物が暴露されることを決して望まなかったにも関わらず - は本当に妥協の余地がない選択だったのか?真実のみが実際に正しく、関連する全ての人を究極的には良い方向へ導く唯一の手段だったのだろうか?この疑問は小説の最後まで心から離れない。
事実への執着的な追求と、隠された真実について、それに関わる全ての人に真実を知らせることが、時には本当に残酷であると思う。私たちは時に、事実を知りたくないと感じる。そして、虚構を真実と信じたいと願う。永遠の愛、完璧な指導者、善良な貧者… 目の前の友人が明日には敵になるかもしれないし、尊敬して頼りにしている聖職者が実は変態である可能性を誰もが知っているが、誰もそれをわざわざ深堀りしようとはしない。宗教も大きな枠組みでそれと似ている。切実に祈りを捧げて助けを求める時、私たちはその祈りが誰にも聞かれないかもしれないという恐怖を心の片隅に抱えている。国家や民族も同じである。私たちは自分たちが属する国家や民族に対し、盲目的な犠牲が美しいと信じているが、その国家や民族が虚構であり、さらには悪事を働いている可能性を見ようとはしない。「え?悪党(villan)って、実は私たちだったの?」という認識ほど、人を苦しめるものはない。
この本は、ストーリーやトリック自体を楽しむだけでも非常に面白く、素晴らしい推理小説だ。しかし同時に、上記のような興味深い問題について考える機会を与えてくれる点でも、非常に楽しい読書体験を提供してくれる。久しぶりにとても面白くて意義深い作品に出会えて嬉しい。時折、フィクションを読んでいてこのような作品に出会うと本当に歓迎だ。フィクションが存在する理由について、これほど素晴らしい答えが他にあるだろうかと思わせるほどだ。もしかすると、フィクション - 小説 - を読むことは、この「フィクションが存在する理由」に対する最も芸術的な答えを鑑賞することではないかと思う。
この本はKindleで日本語の原書を読んだ。ぜひ一読をお勧め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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