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이 책을 산 것은 아마 15년 정도 전일 것이다. 몇 번 이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도무지 재미도 없고 어지러워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 문득, 홀린 것처럼 방 한 구석의 책꽂이에서 이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책꽂이에서 노랗게 변색된 이 책을 찾았을 때, "와... 다행히 안버리고 있었네" 하고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는 10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나는 대표작이자 표제작인 아Q정전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광인일기, 쿵이지, 약, 고향... 이렇게 실린 순서 대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Q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세월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사실 그다지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어간다. 가끔 아름다운 미담을 듣기도 하고, 때론 직접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어쩌면 비일상이고, 비정상일수도 있다. 오히려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아무 생각이 없고, 즉물적이고, 비열하며, 약자에게 가혹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한 것이 진짜 모습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잘 정돈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 대한민국 사회도 조금만 틀을 벗어나보면 정말 한없이 구질구질하고, 더럽고, 무의미한 투쟁과 동물적인 욕심만 가득한 공간으로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누리는 안락함이나 작은 평안함은 어쩌면 정말 당연한 듯 보이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고, 오히려 지금 이순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의 마음을 유지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Q정전의 이야기 - 즉 정신승리법에 대한 비판이나, 아Q의 부조리한 행동, 최하층민이자 한없이 못난 인간인 아Q가 미묘하게 세상의 흐름에 따라 권력자에게 조금 가까이 가거나, 다시 멀어질 때 그를 둘러싼 조그마한 시골 중국의 세상이 그를 대하는 표정을 바꾸는 것들 - 은 다른 매체에도 수없이 다룬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음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아Q정전을 포함하여, 루쉰이 1910년부터 1930년까지 써 내려간 소설들을 읽으면서, 이 작가는 생각보다 아주 예민하고, 또 괴기한 예술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수록작 중 '고향'이라는 소설의 화자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결코 손쉬운 행복을 허락하지 않으며, 피와 가난, 그리고 비위생적인 환경과 절망으로 가득한 삶의 무게를 간단히 덜어주지 않는다. 눈 앞에서 인물들은 무기력하게 미쳐가고, 죽어가는 내용으로 소설들이 가득 차 있다.
그 시대의 중국의 혼란함과, 빈궁, 절망적인 시대상이 그대로 다가오며, 사람들은 모두 반쯤 미쳐 있어 눈이 벌건 것 같다. 시대의 절망과 공포가 소설에서 매우 생생히 전달된다. 잘 알아듣기 어려운 중국식 비유와 유머 코드가 한 층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 안에서 독자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이들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지금의 물질적 풍요가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루쉰이 그토록 극복하고 싶어했던 전근대 중국의 미개함 - 아니 어쩌면 조선을 비롯한 우리 모두의 미개함 - 이 얼마나 징그럽고 또 경멸스럽지만 떼어내기 어려운 인간의 본성 그 자체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윤회하지 않는 것이 해탈이라고 하였으나, 이 루쉰을 소설들을 읽다 보면 정말 그 의견에 동의하고 싶어진다.
그런 면에서 루쉰의 작품은 힘이 있다.
정말 진실 그 자체를 강렬하게 던져 대는데, 그가 그려낸 글에서 사람들의 표정과 산천의 풍경, 거리의 내음까지 풍겨 오는 것 같다. 무엇보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들, 즉 인물들의 "감정과 피로"가 생생히 전달된다.
지금의 나는 나름 삶에 지쳐 이러한 고통의 감정과 피로가 짜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면하지 못하게 하는 루쉰 소설의 장악력은 정말 대단하다. 직시하게 하고, 상상하게 한다. 장면들 하나 하나가 살면서 봤던 중국 영화의 영상들과 뒤섞여 떠오르고 그림을 만들어 준다. 어딘가 구한말의 농민을 닮은 처량한 사람들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그들이 소설 속에서 생존과 생활을 위해 벌이는 끔찍하고 절절한 움직임이 기억처럼 다가온다. 번역된 문장으로 보는데도 이정도로 임팩트가 있는데, 중국인들이 루쉰의 소설을 읽으면 어떻게 느낄까 생각해 본다.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하고, 미국과 패권 갈등을 하면서 중국 공산당이 다시 한국에게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반중, 혐중 감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이렇게 크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은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부정적인 이미지를 놀랍게도 집성해 놓은 문학작품이 바로 루쉰의 소설이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는 이런 문학 작품이 서슴없이 나올 수 있고, 이것을 자국의 대표 문학으로 인정할 수 있는 중국의 저력에도 놀라게 된다. 역시 문학의 진정한 힘은 가감없는 솔직함에서 나온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의 민낯을 바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 공산당의 압제가 끝나고 나면 다시금 화려하게 잘 살 때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문득 같은 맥락에서, 미국 소설가 Joseph Heller가 쓴 Catch 22가 떠오른다.
2023.06.16 - [Book Reviews] - 캐치22 by 조지프 헬러 (안정효 옮김, 민음사)
재미있는 유튜브 강의를 하나 링크한다.
<[아Q정전] 루쉰이 바랐던 중국과 지금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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