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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s

우리의 소원은 전쟁 by 장강명

by FarEastReader 2023.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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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나게 된 경위 역시 특별하다. 먼저 작년 말 우연히 알게 된 한 업계 선배가 이 책에 대해 facebook에 포스팅 한 것을 보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난 주 함께 술을 마신 학교 동아리 후배가 장강명 소설가의 소설이 매우 재미있다는 추천을 해 주어서 당장 읽어 보기로 결심했다. 안그래도 지칠때면 언제나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어지기 때문에,1년에 항상 한 두번은 한국 현대 소설이 엄청 읽고 싶어지는 시기가 있는데, 이런 타이밍도 딱 맞아 떨어졌다. 당장 도서관으로 가서 이 책을 빌렸고, 그 다음날에 이 두꺼운 소설을 모두 읽어 버렸다.



이 책의 배경은 북한의 김씨왕조가 무너져 내린 후, 한국 및 UN에 의해 세워진 과도정부가 북쪽에 들어오게 된 가까운 미래이다. 혼란스러운 상황 하에서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게 된 구 북조선 지역에서 생존과 복수를 위해 드라마를 펼치는 주인공들이 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쉽지 않은 배경과 설정인데 작가의 철저한 조사와 세련된 감각으로 전혀 유치하지 않고 오히려 정말 실감나게 이야기에 몰입해 나갈 수 있었다. 주인공들은 모두 영화의 배우들처럼 멋있고 매력적이었으며, 나름대로의 행동의 개연성이 충분이 존재하는 멋진 캐릭터들이었다. 한사람 한사람 각각 성격이 살아 있었고, 외양과 목소리마저 상상이 갈 정도로 묘사도 구체적이었다. 정말 재미있는 일본 만화책 속 주인공들처럼, 마치 내가 실제 아는 사람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 나올 수 있구나, 하고 진심으로 기뻤고 또 감탄했다. 그리고 살짝 살짝 비치는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독백속에서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예민한 감수성과 일상에서의 소소한 깨달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또한 이 소설의 숨겨진 재미였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떻게 보면 평면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한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설프게 입체적 성격을 갖추어서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그저 우울한 룸펜/ 감정과잉자를 만들어 칙칙하게 만드느니, 이렇게 깔끔하고 알기쉬운 설정이 오히려 빠른 템포의 이야기 전개에도 잘 들어 맞고, 또 작가가 전하려는 '재미있는 이야기'로서의 전체적 아름다움에도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가끔 일본의 '나오키상' 수상작들을 읽곤 한다. 바로 이런 수준높고 재미있는 대중소설에 부여하는 상인데, 내가 좋아하는 아사다 지로, 가네시로 가즈키 등의 작가가 수상한 바 있다. 나는 이 '우리의 소원은 전쟁'을 읽으며, 우리나라에도 나오키상이 있다면, 바로 이 소설이 수상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아마 이 소설은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이 되어도 무리없이 해외 독자에게 어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청나게 심오하지는 않아도, 이렇게 보편적 감성에 호소할 수 있고, 세련되게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장강명씨가 정말 부러웠다. 나도 이런 작품을 언젠가는 하나 쓰고 싶은데... 



이 책의 에필로그 및 저자의 말도 매우 뜻깊었다. 보통은 별 영양가 없는 후일담과 감상적인 코멘트에 지나지 않는 이 부분까지 이 책은 남달랐다. 에필로그는 또다른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자극했으며, 저자의 말은 이 소설을 저자가 어떻게 구성했는지 아주 솔직하고 흥미있게 기록하고 있었다. 저자의 말에서 저자가 참고하고 추천한 외국 소설 '아메리칸 타블로이드'와 '개의 힘'도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던지는 묵직한 문제거리 중 하나인 '통일 후의 디스토피아'에 대해서도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통일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기회와 어려움을 던져 줄까? 나 개인적으로는 정말 통일이 되면 많은 투자 기회가 있을 것 같아 매우 흥미진진하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북녘 동포들과의 융화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수많은 북한 사람들 (북한 여성들은 그나마 좀 나을 것 같다)이 통일 후 겪을 고난과 소외감은 다른 어떤 문제들보다 우리 사회에 큰 위협을 가져다 줄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통일은 우리가 꼭 겪어 내고 해결해 내야 하는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서 그렇게 합법적으로 영토와 인구가 2배 가까이 늘어날 기회는 그리 흔한 것이 아니고, 또 향후 중국이 붕괴하는 등의 격변이 발생하였을 때 우리가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반도가 통일되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통속 소설 하나을 읽었을 뿐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본격적으로 읽어보아야 겠다고 다짐하게 된 책들이 많이 있다. 그만큼 이 이야기가 날 흥분시켰고 또 꽤 큰 임팩트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얼마 남지 않은 여름, 즐거운 소설 한 권 읽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히 권한다. 



P.S. 이 책 역시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에게 추천해도 좋을 만큼 문장이 깔끔하고 읽기 좋다

P.S 2. 북한 관련해서 재미있는 소설 중에는 아래와 같은 작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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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배경으로 한 소설 중에 이전 스타 소설가 장강명님이 쓴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는 소설이 있었다. 읽을거리로써도 매우 재미있었고, 늘 가까이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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