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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s

沧浪之水 (창랑지수) by 阎真 (옌 쩐)

by FarEastReader 2023.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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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번역본으로 읽고 나서 쓴 독서감상문>

 

중국사회에 대해 알아갈수록 중국문화가 한국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언어도 민족도 무척 다르지만, 분명히 한국과 중국은 오랜 역사적, 사상적 교류로 인해 매우 유사한 문화적 공통성을 보이게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창랑지수는 자본주의화 되는 중국 사회에서 한 개인이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묘사한 소설이다. 권력과 돈이 어떤식으로 중국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는지, 그 안에서 중국인들은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순수한 이상을 가졌었으나 결국 세상의 매정한 논리에 순응하여 살게 되는 주인공 지대위의 일대기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것은, 돈과 권력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너무나도 우리 한국 사회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이 책에서 꼬집은 불편한 진실, 곧 금력과 권력의 차이로 인해 모든 사람들간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가 결국 암묵적이고 불평등한 정치적 관계로 설정되고, 그 안에서 상대적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착취하는 현실 그 자체는 모든 국가/민족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되나, 그 세부적인 모양새는 분명 다를 수 있다고 보는데, 이 책에서 묘사한 중국의 세부적인 모양새는 소름끼칠 정도로 한국과 유사했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냉엄한 이 소설의 현실묘사는 따라서 나에게도 무척 생생하게 다가왔고, 향후 직장생활을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교훈들을 많이 전달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한번 쯤 정서와 문화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나는 정서와 문화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나, 분명 다른 개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정서는 '무언가를 느끼는 방식'에 가깝고, 문화를 '무언가를 표현하는 방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인식해 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알기 쉬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먼저 정서부터 말 해 보겠다. 내가 느끼기에, 한국과 가장 유사한 정서를 보이는 국가는 일본이다. 겉으로 보이는 '문화'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다른 두 나라이지만,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의 기초가 되는 정서는 매우 유사한 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소 거친 주장이 되어버렸지만,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잘 알게 되면 될수록 놀라울 정도로 한국인과 비슷한 정서에 근거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사고의 기본이 되는 언어는 사실상 동일한 수준이며, 타인의 존재에 대한 강한 의식, 스스로가 속한 집단에 대한 강한 충성도, 약자에 대한 동정, 자기 희생에 대한 감수성, 순수한 노력을 높이 사는 마음씨, 다른 집단과 문화에 대한 배타성등으로 규정되는 묘한 정서는 정말 한국인과 일본인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이 아닌가 싶다. 다만, 이러한 정서가 구체적으로 형태를 띄며 발현되는 문화는 한국과 일본은 사실상 반대방향으로 발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한국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일본처럼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향후 더 잘살게 된다면 결국 동경과는 매우 다른 모습의 '또 다른 방식의 세련됨'을 창출해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의 측면은 어떨까. 한국과 가장 유사한 문화를 보이고 있는 것은 현재까지는 단연 중국(대만 포함)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측면에서 미국을 따르며 미국 문화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고 있어 그 양태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중국 역시 세계의 흐름 상에서 미국 문화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고 오히려 강력히 받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것이 한국 사회와 중국 사회의 문화 차이를 유발시킬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인과 중국인의 정서는 거꾸로 매우 다르다. 언어 구조와 기본적인 표현의 방식도 차이가 많은것은 물론이고, 중국인의 정서는 중화민족의 일원이라는 매우 거대한 공통집단에 대한 귀속의식과 타인에 대한 의식 보다는 무엇이 스스로에게 더 유리한가를 따지는 본능적인 반응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매우 스케일이 크면서도 타인에 대해 무심한 점이 특징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일본식의 정서와는 꽤 다른 질감의 정서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중국의 문화는 한국의 문화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한국인이 중국/일본과 비교해서 중간에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일본인과 비슷한 정서를 가졌으나, 중국인과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이러한 현실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이러한 정서와 문화의 측면을 감안하고 생각해 보면, 이 책은 표면적인 주제와는 달리 또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읽어 나갈 수 있다. 주인공 지대위는 중국사회에서 태어난 중국인이지만, 중국 사회에서 형성된 문화와는 다소 맞지 않는 이질적인 정서를 가지고 태어난 인물로도 볼 수 있다. 단,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지대위가 옳다던가, 현재의 중국 문화와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러한 정서/문화의 frame을 가지고 이 소설을 읽어 나가며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개인의 정서 혹은 신념과 사회의 가치 혹은 문화가 상충 할 때, 중국 사회에서는 어떤식으로 개인을 길들이는가를 살펴 보는 자료로서도 이 소설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며, 아울러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모습들이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양태와도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통해 한 개인이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생각 과 사회의 현실 사이의 괴리를 겪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유리한가를 솔직하게 말해 주는 여러 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이 점이 나에게 있어서는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가장 소중한 지혜였다.

 

앞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나갈 것인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나 혼자만이 옳을 수는 없으며, 끊임없이 자기가 속한 사회에 적응해 나가고 또 적극적으로 소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향후 내가 한국에서 계속 살아간다면, 아니,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어떤 현실적인 처세훈을 마음에 지니고 지혜롭게 임해야 할 지 한 번 깊게 생각하게 한 좋은 책이었다.

 

이야기 그 자체도 재미있었고 번역도 충실하게 된 좋은 책이나, 구하기가 힘들고 책의 디자인이 마음에 안드는 것은 단점이다.

창랑지수 원서 표지

 

<두번째로 중국어 원서로 읽고 쓴 독서감상문>

 

2013년 1월, 중국에 한창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읽고 큰 감명과 배움을 얻었던 소설 '창랑지수'를 드디어 중국어로 한 번 읽어 보았다.

이 책을 중국어로 읽기 위해서 정말 4개월에 걸쳐 엄청난 노력을 했다. 사실상 말도 안되는 무리를 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리해서라도 창랑지수와 같이 분량과 내용면에서 만만치 않은 책을 완독해 보니 큰 자신감이 붙은 것 또한 사실이다.

다시 읽은 창랑지수는 여전히 정직하고, 또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신기한 것은 한국어로 읽었을 때 느꼈던 주인공 지대위의 느낌과 그의 목소리가 중국어로 읽어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보통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을 읽고 다시 그것을 영어나 일본어 원서로 읽어 보았을 때 주인공의 목소리나 느낌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져서 적응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참 신기했다. 그만큼 이 책의 한국어 번역이 뛰어난 이유도 있을것이고, 표의문자인 한자로 이루어지는 언어예술의 특징일 수도 있으리라.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솔직함이다. 작가는 결코 주인공을 통해 거짓된 감정을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한 솔직한 형상화를 통해 작가가 하려고 했던 말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주인공 지대위는 처음에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는 고지식하고 요령없는 청년이었지만, 결혼을 하고 또 세상 속에서 성실히 살아가면서 조금씩 세상과 타인을 이해하고 스스로 또한 그에 적응해 나아간다. 혹자는 그것을 타협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대위가 살아야 했던 시기와 공간은 개혁개방 이후 90년대 중후반까지의 중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대위의 삶은 어쩌면 부패와 부도덕에 굴복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라고 폄하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그렇게 부정직하게 보지 않는다. 지대위의 삶은 분명 과거 세대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복수를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스스로가 미워했던 것들과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의 방식을 이해하고 폭넓게 이해했다. 그러나 과거의 구태에 머무르거나 맹목적으로 그것을 답습하지 않고, 그 나름의 방식으로 한 걸음 이상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나갔다.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지수청혜가이탁오영)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 창랑지수탁혜가이탁오족)

<楚辭(초사)>에 수록된 漁父辭(어부사)의 위 구절에서 이 책의 제목이 나왔다. 세상이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그에 맞추어 살아가는 태도를 노래한 이 시는 무척 깊은 지혜를 이야기 해 준다. 나 또한 과거에는 맑은 세상, 바른 세상만을 옳다고 여기고 그것에 따라오지 못하거나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격렬하게 배척했다. 그 수준이 너무 지나쳐서 내 스스로를 미워하고, 내가 태어난 나라와 사회의 단점만을 보고 저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러한 태도는 결국 치기어리고 유치한 태도이며, 현실을 왜곡해서 인식하게 하는 잘못된 것임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결국 세상에는 완전한 악도, 완전한 선도 없으며, 주어진 상황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 남는 것 또한 매우 어렵고 귀한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원하던 일이 좌절되면 금새 울상이 되어 세상을 욕하고 스스로를 부정하는 못된 버릇을 가진 나이지만, 그렇게 해서는 결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현실에 잘 적응하고 살아남았다고 하여 결코 비열하고 추해질 필요가 없음을 조금씩 배워 나가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지대위의 삶은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해답이자 모델이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어른이 되어 가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나의 할아버지/할머니 세대, 그리고 아버지/어머니 세대를 생각해본다. 그들의 속물적인 특징과 촌스러움은 분명 아름답지 못하지만 나는 그 분들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힘든 시기를 버텨서 과거보다 훨씬 나은 현재를 이룩하는 데에 기여하였고, 또 후배 세대를 낳고 길러낸 분들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들이 걸었던 길을 함부로 비웃거나 부정하지 않고 묵묵히 한 사람의 어른이 되어 걸어가려 한다. 나 역시 약점 투성이에 못난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현실을 냉철히 인식하되 무엇이 더 나은 것인가를 끊임없이 알려고 하고 그에 가까워 지려고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워 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책은 역시 현대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텍스트라는 점 또한 강조해 두고 싶다. 솔직하게 쓰여진 문학은 정말로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중국은 확실히 지금 이 순간 여러가지 이유로 크게 저평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잘못된 정치체제와 기나긴 빈곤의 역사로 인해 세련된 소프트웨어를 구축할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의 공산당 독재와 부패하고 폭력적인 사회 문화가 일시에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한국이 그것을 극복해 나갔듯이, 중국 또한 끊임 없이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당장 그러한 극적인 개혁이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러한 태도로 더욱 밝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중국인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보면, 중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그들과의 교류 및 상업 활동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중국에 대한 관심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국인은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국제화시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설령 중국인이 우리의 친구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위험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한다고 본다. 중국인과 중국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 책을 일독하는 것은 꽤나 가치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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