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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s

채식주의자 by 한강

by FarEastReader 202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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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를 읽는 내내 느낀 점은, 이 책은 결코 나 같은 독자를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모든 만남이 언제나 그렇듯, 때로는 의도치 않은 조우가 뜻밖의 전개를 가져오는 법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든 중간에 던져버릴 생각을 하고 손에 든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애써 외면해 왔던 무언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다시 그림자처럼 내 안으로 들어와 물감처럼 내 마음 속으로 번져 들어가며 내 마음의 색을 다소 어두운 톤으로, 그러나 조금 더 투명한 색으로 물들여 버렸다.

 

‘채식주의자’는 각각 독립되어 있으나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 편의 작품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편의 소설을 다 읽은 뒤, 멍한 충격 속에서 작가가 이 소설을 언제 썼는지 살펴 보았다. 1970년생 작가가 2004년, 2005년에 발표한 작품이니, 대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기간 동안에 구체화 된 작품이리라.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겠지만 아직 충분히 싱싱하게 젊고 섬세할 수 있는 나이이고, 또 한편으로는 모든 면에서 완전한 ‘어른’으로서 살아갈 수도 있는 나이이다. 작가는 이 묘한 연령대를 살아가며, 아직 생생히 살아있는 날카로운 감수성으로 소설 속의 인물을 구성하고, 또 성숙한 어른의 경험을 동원하여 소설 속의 인물을 설계하고 배치하는 작업을 아름답게 성공시켰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2000년대 초반의 한국의 도시 생활을 능숙하게 재현해 내고, 그 안에서 오직 매우 순수하고 감성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상상력과 감수성을 발휘하여 동물적인 욕망과 폭력성에 저항하여, 그 대척점에 있는 싱그러운 생명을 만들고 유지하는 ‘식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했던 한 여성을 창조해 낸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늘 지나치게 감상적인 것으로 변질되거나, 때로는 유치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인물과 배경을 설정하여 설득력을 상실해 버린 것과 대조적으로, 작가는 철저하게 그리고 매우 세밀하게 인물의 내면과 고민을 묘사해 나아간다. 주변 인물의 몰이해와 각종 욕망의 부딪침 역시 매우 뜨겁고 생생하다. 한없이 징그럽고 또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본성과, 그러한 인간들이 모여 이룬 사회가 만든 팽팽한 욕망과 세력의 균형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무의미하고 파멸적인 탈주를 시도하는 소위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아름답게 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동하였다.

 

아마도 이 소설이 Man Booker Prize를 받아 엄청난 주목을 받지 않았더라면, 우연히 만나게 된 한 출판사 관계자의 적극적인 추천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이 뜨거운 세상에서 스스로를 부단히 단련해 나가며, 끝까지 싸우고, 도망치고, 죽이고, 욕하고 하면서 살아 남고 싶었다. 결코 패배하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도대체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토실토실한 아기의 얼굴을 보면서, 이 아기는 언제부터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이 지독한 싸움을 시작하게 될 것인지 늘 궁금했다. 그나저나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이 싸움에 휘말려 버린 걸까. 왜 나는 항상 단백질을 먹고 육체를 단련하는 일에 강박을 가지게 되었으며, 왜 나는 꼭 미국에 가거나 세계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걸까. 왜 나는 타인에게 모질지 못한 스스로의 유약함을 저주하고, 싸움의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 인물은 모두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어느 한 사람도 특별히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자신으로 인해 타인이 고통스럽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의 욕망을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를 솔직히 드러내도 이해 받을 수 없다.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의사소통이 너무나 서툰 나머지 습관처럼 자신과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고, 파멸적인 결과를 부르고 만다. 별것 아닌 욕망인데 그것이 한없이 부풀어 올라 곤란한 상황으로 치닫고 만다. 정말로 인생 그 자체다. 빠져 나올 수도 없고, 근본적으로 고쳐 나갈 수도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엄습한다. 소설 속 주인공 영혜처럼 되는 것은 과연 행복한 일인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되는 것은 피하고 싶다. 아직은……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를 덧붙인다. 이 소설을 추천해 준 사람은 내게, 이 소설을 읽으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거에요, 라고 말해 주었다. 정말로 그러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소설은 내게 특별했다. 천명관 작가의 ‘고래’도 그러했지만, 한국 소설 중 명작은 정말 생생한 시각 이미지를 제공하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점은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은 영화가 훌륭한 대신 소설이 별로이고, 일본은 소설이 훌륭한 대신 영화는 솔직히 별로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 왔는데, 한국 소설이 별로가 된 이유 중 하나가, 근대 소설 문학의 전통이 일제시대에 시작되었고, 일본인들의 소설이 워낙 뛰어났던 바람에 알게 모르게 소설이 일본의 영향을 심하게 받은 것이 그 이유가 아닌가 싶었다. 즉, 자기 스타일을 찾지 못한 채 알게 모르게 일본인 소설가, 혹은 일제시대를 거친 한국인들의 소설을 모범 삼아 소설을 써 왔기 때문에 형편없는 작품들이 많이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비주얼이 강한 소설은 일본에는 별로 없는 작품 특성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스타일이야말로 한국식 소설 작법의 하나의 특징으로 삼아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인터넷을 좀 뒤져보니, 누군가 2010년에 이미 이 ‘채식주의자’를 영화화하였다. 그러나, 역시, 소설이 강력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영화화 하면 재미있게 잘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뭐 어찌 되었든, 이 책은 정말 거품이 아닌 훌륭한 문학성을 지닌 작품이니, 한 번 읽어 보는 것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간만에 정말 한국 소설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느꼈고, 매우 복잡한 정서적 체험을 해 보았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은 참 넓고, 타인은 늘 생각보다 위대하다.

 

(2016.6.14.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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