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AI로 모든 텍스트가 쉽게 정리되고, 지식이 인스턴트화 하는 시대에, 역사책을 읽고 그 안에서 교훈을 얻으려고 하는 시도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한민국이 건국부터 2026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제 성장 과정을 돌이켜 보고, 그 성공 이유와 시행착오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저자는 천시 (天時), 지리 (地利), 인화 (人和)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이 이룬 경제 발전이 얼마나 예외적이고, 또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논한다. 중국의 발전이 본격화되지 않았고, 전 세계적으로도 2차대전 이후 평화 속 과학기술의 발전 및, 자유진영에서 미국의 엄청난 지원이 있었던 천시 (天時), 그리고 아시아에서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최전방에 있었던 지리 (地利), 그리고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며 신분제와 계급의 모순이 사라진 자리에 잘 교육받은 국민, 증가추세에 있는 젊은 인구,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리더가 어우러진 인화 (人和)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성공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정리하고 나면 매우 간단하게 들리지만, 사실 이 정도의 조건이 갖춰지고, 그 안에서 만들어 온 선택을 하나 하나 실행시키고, 성동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언제나 가지고 있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50년대 한국을 2010년대 한국으로 만드는 것과, 2010년대 한국을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국으로 만드는 일 중 어느 것이 어려운가 하는 질문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이제 한국 사회, 한국 경제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하는 막연한 패배주의가 감돌고 있다. 인구도 줄어들고, 전성기는 이미 지나버렸고,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다투는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별로 없다고 믿는 우울한 예측이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과연 1950년대의 한국이 2010년대의 한국처럼 된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우리는 사실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성과를 내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길을 잃게 된 것일까? 나는 이 책이 가지는 진짜 가치는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의외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점에 있다고 본다.
결국 우리가 현재 깊은 막막함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어졌던 천시와 인화가 사라졌다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익숙한 세상이 바뀌었다는 전제 하에, 지금까지의 성공방식을 모두 잊고 새로이 적응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직시 해야 한다.
현재의 새로운 경쟁 체제, 즉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빚어내는 세계 속에서, 우리나라는 이제 분명한 노선을 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이기적인 중립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가 새로운 천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확실히 중국 편이든 미국 편이든 어느 한 쪽을 정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 어느 쪽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채, 겉으로는 미국의 동맹을 유지하는 듯 하면서, 상당히 중국에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리 면에선는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미-소냉전, 즉 자유주의-공산주의 체제대결은 종료되었지만, 이제는 미국-일본-서유럽 세력과 중국-러시아-북한 세력의 대결은 여전히 첨예한 상황이므로,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결코 감소하지 않았다. 중국에게 있어서도, 미국에게 있어서도 한반도는 포기하기 어려운 입지다.
그러나 인화 측면에서 역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젊은 국가가 아니며,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서서히 사회적으로도 계급화가 진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와 6.25.를 체험하며 일본식 정신주의와 직업윤리를 무의식적으로 승계한 채 전쟁과 가난으로 한없이 터프하던 '의지의 한국인'들은 이제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오히려 우리 주변엔 과거 조선왕조의 '소중화 정신'을 계승한 듯한 사대적인 사람들과, 그 시절의 계층 의식과 특권 의식을 고착화 하는 기득권층이 늘어나고 있다. 리더들은 실용보다 명분 싸움과 그럴듯 해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 인화의 붕괴 증상의 정점은 사법제도의 타락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재판제도가 권력에 맞추어 재편되고 있고, 검찰은 이미 해체되어 공소청이 되었다. 법관들이 각급 기관장을 맡고 있는 선관위가 감사도 받지 않고, 주요 선거에서 실수를 연발하고 있는 것 모두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 이 정도로 무책임하고 타락했다면, 다른 권력기관이나 행정기관, 그리고 사기업에서 나타나는 여러 경고음이 단순한 예외나 사고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왜 성장했는가에 대한 고찰을 우리를 칭찬하고 자부심을 갖기 위함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 자신을 반성하기 위한 재료로 활용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그러한 반성을 진지하게 수행해 나아가는 데에 기여해 나갈 수 있는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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