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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s

무증거범죄 by 쯔진천 (최정숙 역)

by FarEastReader 2023.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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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 이 때 박차를 가하려면 양질의 중국어 컨텐츠를 많이 접해야 하는데, 높아질대로 높아진 컨텐츠에 대한 눈높이를 고려하였을 때, 좋은 중국어 컨텐츠를 찾아 내는 게 결코 쉽지 많은 않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서 중국어를 배우는 기록을 계속 남겨 가면서, 중국어 관련 좋은 컨텐츠에 대한 소개도 쌓아 가려고 간다. 이전에 소개한 창랑지수도 그런 맥락에서 참고할 만 하다.

 

<창랑지수 리뷰>

2023.03.27 - [Book Reviews] - 沧浪之水 (창랑지수) by 阎真 (옌 쩐)

 

沧浪之水 (창랑지수) by 阎真 (옌 쩐)

중국사회에 대해 알아갈수록 중국문화가 한국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언어도 민족도 무척 다르지만, 분명히 한국과 중국은 오랜 역사적, 사상적 교류로 인해 매우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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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증거범죄는 한 예술가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생각보다 꾸준히, 그리고 넓은 범위에서 책을 읽는 그가 갑자기 보내준 #쯔진천 이라는 태그 카톡을 보고, 안그래도 좋은 중국어 컨텐츠를 찾고 있었던 나는 바로 도서관에 가서 이 작가의 책을 찾아 보았다.

 

중국 대륙의 대중 소설은 몇 권 읽어 보았는데, 약간 80년대의 한국 소설 느낌이 나는 부담스럽고 사회 비판적인 소설이나, 아니면 2000년대 한국 소설 느낌이 나는 90년대 일본 소설의 감성과 이야기를 흉내낸 것 같은 가볍고 열화(劣化)된 버전이 많아서 그리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이 책 또한 처음에는 낯선 중국의 수사기관 이름과 특유의 중국어 번역투가 너무 낯설어서 적응하기가 어려웠는데, 점차 읽어 나가면서 꽤 스토리에 빠져들어갈 수 있었다. 세세한 살인에 대한 묘사보다, 살인 사건에 대한 동기를 만들어가는 서사에 집중하는 모습과, 그리고 그 동기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수사관계자들의 모습,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는 신념을 관철하는 모습이 꽤 흥미로웠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고민한 세계 명작이 있다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있을텐데, 같은 주제를 재미있고 쉽게 와닿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풀어나가는 것이 매우 재미있었다. 

 

<죄와 벌 리뷰>

https://onlight.tistory.com/41

 

죄와 벌 by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역)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걸작이다.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크나큰 영향력과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 책은 분명 평생에 걸쳐 몇번 다시 읽게 될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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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의 추리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을 매우 닮았다고 한다. 주요 인물들의 설정도 이 용의자 X의 헌신을 꽤나 참고해서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이 무증거범죄의 범죄 비밀을 파헤치는 것은 '저장 대학의 수학 교수'인데,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범죄를 추리해 나가는 인물은 '고등학교의 수학 교사'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점에서 용의자 X의 헌신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정작 저자 쯔진천 본인도, 2012년 읽은 용의자 X의 헌신을 접하고 추리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하니, 아마 상당한 영향을 받았을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내가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인데,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자, 사람들은 거꾸로 그게 더 행운이라고 말해 주었다.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나서 이 소설을 봤으면 재미 하나도 없었을걸. 차라리 영향 받은 작품을 보고 원본 오리지날을 보는게 낫지."

 

나도 묘하게 수긍이 갔다. 덕분에 다음에 읽을 책이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나는 이렇게 책을 통해 다른 책을 읽게 되는 경험을 매우 좋아하는데, 그 점에서는 매우 고마운 책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 자체도 상당히 재미있다는 것을 확실히 해 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뤄원, 옌량과 같은 주요인물은 물론, 주후이루와 궈위같은 사건의 핵심인물까지 하나하나 마치 원래 아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의 흡입력이 좋다. 다소 뻔한 전개와 인물이 두드러지고, 중간 이후에는 누가 범인인지, 왜 그랬는지도 많이 눈치채게 되지만, 이것을 하나 하나 어떻게 풀어 나갈까 참 궁금했고, 이 이야기를 유치하지 않게 풀어 나가는 솜씨도 볼만 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완전 범죄를 기도하는 경우가 있다. 엄청난 큰 범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소소한 위반이나 태만으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것을 잘 덮고 넘어가고자 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덮어주거나 무마해 줄 때도 있고, 그러한 선택에 때로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충분한 '명분'과 '정의', 그리고 '이유'가 있을 때도 있다. 악법도 법이라고 하면서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와 같이 깊은 철학적 고찰을 통해 정신으로 행동과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에서 조금씩 피어나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또 이것을 어떻게 합리화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지를 한 번 이 이야기와 주요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살펴 보면 좋을 것이다.

 

재미있게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역시 '좋은 이야기는 좋은 고민을 던져준다'라는 것이다. 용의자 X의 헌신까지 다 읽어 봐야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 평할 수 있겠지만, 만약 그 영향을 빼고 이 작품만으로 평가하자면 정말 즐겁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좋은 컨텐츠를 찾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권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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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증거 범죄:, 한스미디어, 쯔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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