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읽었던 소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걸작이다.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크나큰 영향력과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 책은 분명 평생에 걸쳐 몇번 다시 읽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 그 때 마다 다른 메세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은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로쟈)가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이복동생을 도끼로 죽이는 살인을 저지른 후, 자수를 선택하기까지의 기간 동안 주인공의 내면의 갈등을 철저히 묘사하고, 주인공과 관계된 여러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과 그 인물들간의 대비를 통해 주인공이 자신이 저지른 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로쟈는 관념적이고 궁핍한 법학도이고, 우울과 쇠약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결코 궁지에 몰린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젊었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며, 쇠약해졌을지언정 깊게 병들지 않은, 그럭저럭 쓸만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와 그의 가족은 가난했지만, 절망적인 빈곤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로쟈는 이러한 상황을 한없이 부정적으로만 인식하고 괴로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질서와 빈곤, 희망없음으로 가득 찬 세상이지만, 사람들 중에는 이를 극복하고 일어서서 영광을 차지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고 현 상태에서 그저 존재만 하고 역사와 사회를 위해 그저 존재하고 희생당할 뿐인 사람이 분명히 나누어 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번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괴로움이나 번민은 사회 전체를 위하는 공익적인 것이나, 아니면 현실을 비판하고자 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괴로움은 오직 과연 그가 '특별한 존재'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비루한 현실을 담담히 받아 들여야 하는 '보통의 보잘것 없는 존재인가' 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 데에 기인하고 있었다. 결국 그의 내면에는 그 자신 말고는 아무도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 되어 있는 것이다.
로쟈가 수전노에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가차없이 쥐어짜먹는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자 한 것은,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 그 자체를 위한다기 보다는, 그 스스로가 그러한 명분이 주어졌을 때 이를 가차없이 실현 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로쟈가 그것을 실행하였을 때, 그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살인행위가 가져오는 본능적 공포와 흥분을 여과 없이 경험하고, 그 앞에서 주어진 살떨리는 상황에 대처해 나가는 현실의 냉엄함만을 지겨울 만큼 경험하게 된다. 그는 여전히 자신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으며,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는 자책과 함께, 그것이 가져올 여러 후속 결과들을 어떻게 해서든 잘 처리해야 한다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상황에 놓인 로쟈는, 때마침 그의 주변에 여러가지 이유로 모여든 그의 주변 인물들과 접하고, 또 그들이 벌이는 사건들에 휘말리며 스스로가 벌인 살인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로쟈의 주변 인물 중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그에 대한 수사망을 좁혀오던 예심판사 포르피리와, 로쟈의 여동생 두냐에게 열정을 품고 끊임없이 추근대는 스비드리가일로프이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두냐, 그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소냐, 그리고 그의 가장 좋은 친구로 남아주는 라주미힌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고 이야기 전개에 핵심적인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로쟈의 방황을 표면적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로쟈는 그의 어머니와 두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소냐에 대해서도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가지게 되고, 라주미힌에 대해서도 전적인 신뢰를 보내지만, 결국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답답해 하며 계속 신경질을 부린다. 그러나 포르피리와 스비드리가일로프에 대해서는 다르다. 로쟈는 이들은 그 자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포르피리는 성실하고 신의를 가진 존재의 입장에서 로쟈에게 길을 제시한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비열하고 아무렇지 않게 악행을 하는 존재의 입장에서 로쟈에게 길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둘이 제시한 길은 구체적인 방법은 달랐지만, 내용은 같았다.
"스스로가 별거 아니라는 것을 그냥 받아 들여라."
두 사람 모두 로쟈가 범인이라는것을 각각 다른 경로이기는 해도 알게 되었지만 결코 이것을 가지고 로쟈를 옭아매거나 관청에 알려 가두려 하지 않았다. 이들은 로쟈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르피리는 성숙한 마음 쪽에서 로쟈가 스스로 죄값을 치르고, 다시 출발할 수 있기를 도와주고자 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비열한 마음 쪽에서 로쟈가 별거 아닌 행위에 마음 쓰지 않게 되고 잘 빠져나가서 자기처럼 그냥 죄에 신경 쓰지 않고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로쟈의 여동생 두냐를 다시 어떻게 해 보고자 하고 있었다. 둘 다, 로쟈가 이 일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며, 해결책은 오직 로쟈가 쓸데 없는 사상과 복잡한 생각을 포기하고, 스스로도 단순한 인간이며, 어리석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달려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로쟈는 스스로가 공상하고 있던 대로 살인만 제대로 해 내면 모든 것이 정리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봐도 남들보다 우월하고 더 섬세하며 지적이고, 또 선함과 정의를 믿는 자신은 분명 남들과는 달리 특별한 삶을 살 자격이 있다는 것을, 가치없는 악인인 전당포 노파를 죽이는 것을 실행함으로써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희미한 추측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희미한 기대와 추측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그가 가진 이상과 그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사상도 종교도 위안을 주지 못하는 막막함 속에서 그저 미쳐 날뛴 것에 불과했다. 다만 그것을 그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스스로의 이상적인 모습과 적절히 섞어서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내고, 그것에 스스로 속아 실천까지 해 버린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로쟈의 살인은 단순한 충동적 발작은 결코 아니다. 성격상 친구 라주미힌처럼 선하고 믿음직한 방식으로 세상에 대응해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여동생 두냐의 비열한 약혼자 루쥔처럼 비열하고 쥐새끼같은 방식으로 세상에 적응해 나갈 수도 없는 로쟈는 분명 이상주의자였고, 선한 인물은 선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나름의 미학과 정의감이 있었고, 세상의 모순과 비열함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가 해충 '이'에 비유하고 죽이겠다고 결심한 전당포 노파는 아주 간단히 말해 어쩌면 정말로 없는게 더 나은 사람일 수도 있다. 로쟈는 뜻하지 않게 전당포 노파의 이복 동생 라지에타를 죽인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워 하고 그녀의 죽음을 가여워하였지만, 전당포 노파를 죽인 것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죄책감과 두려움은 느꼈을지언정 끝내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로쟈는 신앙도 없었다. 그가 사람을 죽인 것을 소냐에게 고백하였을 때 소냐는 그에게 자수를 하고,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하였을 때 그는 내심 어이가 없어하였다. 그리고 스스로는 죄를 지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노라고 소냐에게 답답해하며 실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쟈의 마음을 자수 쪽으로 굳힌것은 소냐의 순수한 마음의 공이 컸다. 로쟈는 단순한 소냐에게 자신의 복잡한 살인 동기를 이해시켜 주려고 절실하게 설명하다가 문득 스스로가 살인을 한 것은 결국 스스로가 살아 있고, 뭔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껴보고 싶어서, 결국 스스로를 위해 그냥 해 버린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로쟈는 결국 자수를 하고 시베리아로 유배를 가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처음으로 자기는 숭고한 존재도, 도덕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존재도 아니며 단순히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버린 보통의 존재, 아니 어쩌면 그 이하일 수도 있음을 가슴 깊이 받아 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고나서야 처음으로 로쟈는 삶다운 삶을 살고, 실체 없는 괴로움과 초조함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특히 진지하고 심성이 착하지만 고집이 센 사람일수록 스스로가 특별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쓸데없이 초조해하고 또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 또한 지금까지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 쓸데없이 과격하고, 쓸데없이 분노하고, 쓸데없이 질투해왔다. 늘 초조하고, 남들을 부러워했다. 실용적이지도 못하고, 성스럽지도 못했다. 착하지도 못하고 신나게 악행을 저지르지도 못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로쟈의 갈등과 고통을 정말이지 미친듯이 생생히 전달하면서, '이렇게 되지 말고 너도 다시 생각해 봐', 라고 말을 걸어오고 있다. 그렇다. 인생은 어쩌면 스스로가 특별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한 순간부터 즐거워 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렇게 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공과 실패는 운에 맡기고, 조금은 소박하고 또 조금은 쿨하게, 매일 주어진 삶을 최대한 사랑해 볼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이 책은 민음사 번역본 (김연경 역)으로 읽었다.
이 글을 읽고 이 책을 읽고 싶어진 분은 아래의 링크로 구매를 부탁드린다.
(위 링크는 쿠팡파트너스 링크로, 이걸로 구매하면 작성자에게도 소정의 수수료가 지급됨)
'Book Revi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멀티팩터 by 김영준 (2) | 2023.11.26 |
---|---|
무증거범죄 by 쯔진천 (최정숙 역) (0) | 2023.11.26 |
행복의 기원 by 서은국 (2) | 2023.11.26 |
한국의 시간 by 김태유, 김연배 (1) | 2023.11.23 |
運の良くなる生き方 (운을 읽는 변호사) by 西中務 (니시나카 쓰토무) (1) | 2023.11.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