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가끔 특이한 책을 만나게 된다. 아주 독특하고 강력한 주장을 펼치는 그런 책, 완전히 새롭고 강렬한 이야기를 던지는 그런 책 말이다. 보통 이런 책들은 독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부정확하고, 독선적이고, 또는 극단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책도 도움이 된다. 너무 이런 책만 읽으면 이상한 사람, 치우친 사람이 되기 쉽지만, 때로는 주류가 말하는 것 외의 이야기도 들어 보면서 유연하게 사고를 해 보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없다’는 한 젊은 친구의 소개로 읽게 되었다. 해외 경험이 긴 사람으로서 비즈니스와 현대 지정학, 그리고 역사에도 관심이 많은 그런 사람이다.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소개해 주었는데, 과연 이 책은 매우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중국은 없다’는 박근형이라는 한국 사람이 중국에서 익명으로 발표된 네 편의 글을 번역한 것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 박근형씨는 단순히 번역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익명의 저자의 글에 주석을 첨가하고, 또 번역문의 사이 사이에 자신의 글을 배치하며 주장을 전개해 나간다. 박근형씨가 번역한 네 편의 글은, 원나라와 청나라는 몽골인과 만주인이 각각 중국인을 식민통치하며 잔악하게 탈취, 겁탈, 약탈, 노예화한 역사로서 중국사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고 강변한다. 또한 이들 원나라와 청나라의 폭력적인 중국인 억압과 파괴행위, 약탈과 노예화로 인해 중국의 문화와 발전이 크게 퇴보하였으며, 특히 청나라의 폭정이 중국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거꾸로 현대 중국과 중국 공산당이 청나라를 적극적으로 중국 정통 역사로 편입하고, 또 이 청나라를 ‘자랑스러운 중국 역사’로서 포섭하는데 열중하고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누가 보아도, 익명의 중국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청나라는 만주에 있던 여진족의 후예인 만주족이 세운 나라로서 철저히 만주인의 한인 통치를 근간으로 했고, 한족에게 변발과 만주 복식을 강제한 나라인데 이걸 자기 역사라고 하면서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거꾸로 명청 교체기에 청나라에 대항해서 청나라에게 끝까지 저항한 명나라 장수와 충신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비방하고, 청나라에 협력한 오삼계와 같은 사람을 중국 통일을 가능하게 한 공신으로 재평가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정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마치, 책에서 인용한 익명의 중국인 저자들이 비유한 것처럼 일본인인 중국을 침략해서 난징대학살을 일으키고, 만주국을 설립하고 괴뢰정부를 세워 중국을 통치하는 것에 대해 ‘일본 역사도 중국 역사’라고 우기며 예전의 대일본제국을 중국사로 편입해서 찬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억지를 중국 공산당이 청나라의 계승자가 된다는 빌미로 신장-위구르 지역, 티벳, 몽골, 대만, 나아가 우리나라 (한반도) 까지 집어삼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벌이고 있는 쇼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노예민족이자 식민통치의 대상이었던 한족 중국인들 (책에서는 이들을 ‘화하민족’이라고 부른다) 이 역사 왜곡을 통해 침략당한 과거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침략자와 동일시하는 정신분열적인 역사관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 책의 편역자인 박근형씨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환단고기’류의 주장을 펼치며 ‘동이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범 몽골족, 즉 몽골, 만주, 부여, 여진, 고구려, 백제, 일본 등이 하나의 민족으로써 한반도에 있는 한국민들 (굳이 부르자면 조선민족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을 중심으로 중국인을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형씨는 나아가 이슬람에 대해서도 강력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시종 일관 중국인 (즉, ‘화하민족’)의 열등성을 주장하고, 이들이 청나라의 250년 통치 동안 완전히 우민화 되었으며, 철저하게 농락당하였고, 또 길게 보면 4600년 중원 역사에서 당나라와 명나라 정도를 제외한 4200년간은 계속 노예 신세로서 피지배 하층 민족을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이들은 되살아날 가능성도 없고, 결국 중국 공산당이라는 기형적인 체제에서 잠시 힘을 가지기는 했지만 결국엔 다시 망해서 동이족 (박근형씨에 따르면 ‘조선민족’이 될 것이다)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될 당위가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의심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박근형씨는 중국인들의 역사 왜곡과 외세 침략자 (몽골과 만주인)를 자기 자신이라고 우기는 중국인의 정신분열적인 행태를 조롱하고 비판하지만, 지구가 아닌 ‘북두칠성’에서 온 천신의 후손이라는 우리 조선민족이 한반도에서 펼쳐낸 비루한 패배의 역사에는 그저 눈을 감는다. 저자가 비판하는 중국의 화하족이 한반도에 잔류하게 된 조선인과 뭐가 그리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을 건국하여 잘 살게 된 것은 우리가 우수해서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일본인이 우리를 점령하여 강제 개화 시키고, 그 이후 미국에 의해 독립해서는 미국과 소련의 이념으로 인한 냉전시기에 미국의 지원을 받아 거의 역사상 처음으로 엄청난 경쟁력을 가진 것이 아닌지를 반문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몽골이 점령하여 장기간 지배한 지역인 러시아와 중국이 오늘날 서구 대비 발전이 더딘 모습을 보이고, 더욱 낙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라. 그리고 저자와 저자가 인용한 익명의 중국인 저자들의 주장대로 만주의 야만족인 만주족이 청나라를 건국하고 실컷 착취한 중국이 지금처럼 존경할 수 없는 문화수준의 국가가 된 것을 생각해 보라. 이들이 이러한 잔혹한 야만 세력 착취자라면, 현대 사회에서 이들과 민족적으로 같은 혈통이라는 것이 우리를 긍정하는 이유로서 충분한가? 이건 단순히 힘에 대한 동경에 불과하고, 또 침략당한 역사마저 자기 역사라라고 우기는 중국인의 역사 왜곡만큼 비참한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인이 역사관은 분명 모순이 있고 우스운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사실 그 많은 인구와 경제력, 자원을 가지고도 침략만 주구장창 당하고, 중국 밖으로 제대로 나간 적이 없으면서 스스로가 ‘중화’라고 잘난 척을 하는 것도 진짜 병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도리어 중국인을 비난하기 보다는 ‘소중화’를 자처했던 우리의 모습을 더욱 반성하고, 근거없는 선민 의식을 가지기 보다 지금까지 없었던 더 발전되고 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몽골이든 만주족이든 결국 남이다. 혈연이 있어도 남은 남이다. 일본은 남이 아닌가? 일본이야 말로 유전적으로도 가깝고 백제인의 후손이라고도 볼 수 있는 형제 민족인데, 일본은 우리를 철저히 남 취급하고, 100년전엔 만주인이 중국인을 대하듯 우리를 정복하고 노예화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몽골이나 만주족의 성취를 ‘우리 동이족의 성취’ 또는 ‘치우천황의 후예 위대한 배달민족 동이족은 원래 대륙에 있었다’ 같은 허무한 주장이 아니라, 변방의 가난하고 인구도 적은데다가 문명수준도 뒤떨어졌던 몽골이나 만주족이 어떻게 힘을 키우고, 나아가 중국 정벌을 통해 제국 수립에까지 성공하였는지를 정확히 알고, 이들의 성공 비법을 배우고 분석하여 그것을 통해 우리를 어떻게 강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기억하라. 몽골의 칭기즈칸과 유라시아를 다 통일한 몽골제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청나라가 다이칭 그룬 제국을 만들어 중국과 그 주변 일대를 다스렸던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본이 대일본제국을 만들어서 동북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나아가 뉴질랜드까지 정복하고 대동아 공영권을 추구했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치우천황? 대륙을 호령했던 진정한 동이족의 역사? 이런 주장은 부정하는 사람 투성이이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타민족을 폄훼하고 바보 취급하는 것에 있지 않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본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배울 것은 철저하게 배우고, 또 존중할 것은 존중해 주면서 우리 스스로가 이들을 압도하는 실력과 문화, 사상을 키워 증명하지 않으면 결국 남는 것은 없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참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중국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나 역시 타인의 흠결을 보기 보다, 지금 이 순간 내 자신에게 필요한 기량과 실력, 경제력을 갖추는 것에 더욱 헌신하고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 노력과 자강(自强)의 결실이 없으면 결국 역사에서 보는 것처럼 남는 것은 노예화와, 자신을 노예로 만든 지배자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것에서 자존감을 찾으려는 정신분열적이고 처량한 신세가 된다는 것을 무서우리만큼 생생하게 느끼게 만들어 준 책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렇게 되어 놓고 자기보다 더 못난 사람을 찾아 그 모습을 보며 위안과 우월감의 썩은 단맛을 보려는 태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이렇게 개인적인 의지를 다지는 의미에서도, 또 간만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어 보는 의미에서도 기억에 남는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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