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관한 책은 정말 여러 권 나와 있지만, 중국인에 의한 중국론을 찾아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는 중국 저자들이 강력한 언론 통제에 의해 관, 즉 중국공산당의 입장만을 대변하거나, 중국에 대해 찬양일변도의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 간혹 중국에 비판적 견해를 취하는 경우에는 사실상 중국을 저주하는 극심한 반체제인사에 의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한 개인이나 한 저자가 제대로 표현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점에 대해서는 참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얼마 전 중국을 다녀 온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 책을 추천 받았다. 우선 만화라서 읽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 이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시절 한 좌파 사회과학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살까 말까 고민했던 기억이 떠올라 이번 기회에 꼭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만화는 이 만화를 그린 만화가 리쿤우(李昆武)의 자전적인 이야기이자, 1950년대~2010년대의 중국의 변천을 생생히 그려낸 그래픽 노블이다. 특이하게도 중국인 만화가와 프랑스인 작가(필리프 오티에, Philippe Ôtié)의 합작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이 만화는 중국의 한 지방 도시인 윈난성 쿤밍시를 중심으로 그 안에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그리고 마오쩌둥의 죽음과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나아가 중국의 경제 발전까지를 한 개인으로서 겪어낸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보통 이런 주제를 다룬 책은 격동의 중국 현대사 안에서 힘없는 중국인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그 안에서 어떤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졌는가 하는가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만화는 달랐다. 세상이 그렇게 마구 변하는 가운데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적응하고 또 살아나갔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조국과 사회가 개인을 그렇게 마구 짓밟는 가운데에서도, 그것이 비록 가스라이팅과 세뇌에 의한 것일지언정, 어떻게 한 개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한 조국과 사회를 사랑하고, 그것이 주장하는 가치관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가를 잘 보여주고 었다.
중국을 적대시하고 또 중국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한국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왜 중국을 사랑하고 중국인임에 자부심을 느끼는지 잘 알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오랜 역사 기간동안 최근 1980-2010년의 30년을 빼고는 단 한번도 중국보다 제대로 잘 살아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직간접적인 지배와 통치를 수백년 이상 받은 우리들이 어떻게 중국에 대해 그렇게 오만방자하고 관대한지 나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오히려 나는 이 만화를 보면서, 중국이 철저한 실패를 겪었던 개혁개방 이전 시대, 즉, 1945 일본 패망 이후 1979년까지의 마오쩌둥 1인 독재 시대에, 중국이 세계에서 철저히 소외 당하고 거지꼴로 살았던 시대에도 그 안에서 중국인들은 정말이지 엄청난 황당함 속에서도 끈기 있게 버티고, 고통을 감내해 냈다는 점에서 무서움을 느낀다. 이들은 정말이지 역경에 강하고, 한없이 참아 내는 사람들이다. 촌스럽고 더러울 수 있을지언정, 결코 약하거나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정말 진지하게 경계하고 또 그 저력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왜 우리는 중국을 경멸하는 것일까?
이 책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귀함과 천함이 얼마나 의미없고 또 바뀌기 쉬운 가치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외부적 조건과 시대적 광기에 따라 사회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고 마치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묘사된 사회에서처럼 모든 것이 정말 손바닥 뒤집히듯이 바뀌고 나면 어제의 승자가 오늘의 패자가 되고, 어제의 역적이 오늘의 영웅이 된다. 친구는 언제든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고, 모든 배신과 비열한 공격에는 이를 뒷받침할 합리화 논리가 준비되어 있다. 정말이지 새옹지마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그리고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각오하고 살아야 겠다고 다시금 되새겨 본다.
이 책은 단순히 드라마로도 상당히 재미가 있다. 주인공의 인생과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인생은 결국 미시적으로는 그저 감당하기 어려운 외부적 변화에 하루하루 급급하게 대응하며 살아가는 것이지만, 거시적으로는 중국사회의 변화 및 발전과 함께 크게 변화해 나간다. 그 변화의 진폭만큼 강렬한 드라마가 자연스럽게 태어난다. 가난해서 빼빼 말랐던 빈농의 아들이 글로벌 기업과 제휴하는 생수 회사 사장이 되는 과정에서 드라마가 없을 수 있겠는가? 지주의 손자로 태어나 문화대혁명 때 배척 당했으나 홍위병으로 활동하고, 그 이후 군입대를 하여 전쟁에도 참가했다가 (중국 - 베트남 전쟁) 만화가로서 신문사에 정식 취직한 사람에게서 드라마를 찾지 못한다면 어디에서 드라마를 찾을 것인가.
중국인들을 '중국'인이기 이전에 중국 '사람'이라고 셍각해 볼 순 없는 걸까? 중국인을 '중국'인으로만 보는 한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중국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은 꼭 한 번 읽어 볼만한 책이다.
관련하여 중국의 급속한 현대화 과정 속의 한 개인의 삶을 정말 아름답고 또 진실하게 그려낸 수작이 있다. 옌 쩐(阎真)이라는 작가의 '창랑지수'라는 소설인데, 나는 아직도 중국의 몇몇 노벨상 수상 작가의 작품보다 이 옌 쩐의 작품이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2023.03.27 - [Book Reviews] - 沧浪之水 (창랑지수) by 阎真 (옌 쩐)
한 시대의 전환기가 다가오려고 하는 지금, 앞으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이야기는 매우 귀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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