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메이지 유신에 관한 책 한권을 리뷰한 적이 있다.
2024.10.01 - [Book Reviews] -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by 박훈
일본의 메이지유신은 정말 보기 드물고 매우 성공적인 위로부터의 개혁 사례이다. 지금 매우 혼란한 정국에 빠져 든 대한민국에서, 일본의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매우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메이지 유신은 막부체제라는 체제에서 천황과 사츠마-쵸슈 세력을 중심으로 한 근대화 사무라이 세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일본이라는 근대 국가 체제로 국체(國體)가 변하는 매우 거대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주요 리더들과 협력자들의 결단과 옳은 판단의 연쇄결과 이기도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그리고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다. 이들 네 인물은 각각 일본 근대화의 영웅으로 일본 내에서 매우 인기가 많은 사람들이다. 그만큼 꽤 다면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있고, 이 책은 바로 이 인물들에 대한 그 연구 결과의 요약서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들 인물은 사실 일본인의 성격과 기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보수적이고 조용하고 예의를 지키는 일본인상(日本人像)은 사실 90년대 이후 일본이 늙어가면서 정착한 이미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전의 일본인들은 좀 더 전투적이고 남성적이고 쾌활한 이미지가 있었다. 바로 그 상징적인 존재들이 바로 호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브레인이었던 사무라이의 스승 요시다 쇼인, 쾌남 그 자체로써 늘 새로운 것에 가장 기발한 방법으로 도전하여 결과를 내는 사카모토 료마, 딱딱하고 터프한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 그리고 실용적이고 매우 결단력이 빠른 실무형 천재 오쿠보 도시미치라고 할 수 있다. 다들 어딘가에서 일본 드라마나 만화에 나올 법한 그런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슬램덩크의 인물로 억지 대입해 보자면 요시다 쇼인은 약간 안감독님 (뚱뚱해 지기 전), 사카모토 료마는 강백호, 사이고 다카모리는 채치수, 오쿠보 도시미치는 약간 인기 없는 서태웅이나 윤대협 같은 이미지가 아닐까?
이런 사람들이 역사에 갑자기 대거 등장하여 사츠마-쵸슈 중심의 대 혁명인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켜 가는 이야기는 스토리 면에서도, 또 인물의 다채로움 면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드라마를 완성시켜 준 것은 단순히 인물의 카리스마성 뿐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 일본을 가득 채웠던 유학(儒學)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보급,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발전을 추구했던 일본의 지방 세력들의 존재, 당시 중앙정부였던 막부 정부가 생각보다 부패하지 않고 고리타분하지 않았다는 점 등 여러 발전적인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이같은 1800년대 일본 사회의 분위기는 단순히 몇몇 영웅들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한없이 만만하고 가볍게 보는 일본 사회의 진짜 강함은 이런 선순환을 만들어 가는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경험을 집단적으로 해 본적이 있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일본 역사를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집단이 발전하려면 리더를 제대로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리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회와 집단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노력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능력주의의 정착, 도덕이나 명분보다 실리와 결과를 중시하는 분위기 -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유지해가는 것이 한 집단이 굴기(屈起)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상적, 종교적 명분론만을 앞세우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 또 얼마나 슬픈 사회인지를 생각해 본다.
사무라이들이 일본을 개혁하고 자신들의 기반인 영지를 해체하여 새로운 국민국가 일본제국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부러움을 느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통쾌한 위로부터의 혁명이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작금의 계엄령 해프닝과 현직 대통령의 구속 사태를 보면서 뭔가 다른 방향으로 국체(國體)가 바뀌어 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진다.
한가지 사족을 붙이자면 이 흥미로운 책에도 한가지 오류가 있다. 책 123쪽에 일본어 浪人(ろうにん、낭인)이라는 말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건 '로진'이 아니라 '로닝' 이라고 읽는 것이 맞다. 가끔 보다 보면 이렇게 일본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일본어 사용에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참 외국어라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저자 박훈 교수님의 일본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지만, 책의 완결성을 위해서 이런 쉬운 일상 용어 단어의 오류는 바로잡는 것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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