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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s

수술의 탄생 by 린지 피츠해리스, 이한음 번역

by FarEastReader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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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매우 흥미롭게 읽은 과학사 서적이다. 무식하게 칼로 째고 그저 상처를 꿰매버리기만 했던, 흡사 도살작업 같은 외과 수술은 1840년대 마취 기술의 발전에 의해 한 층 덜 끔찍한 것이 되었지만 여전히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술은 그럭저럭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더라도, 즉, 수술 중에 사람이 쇼크를 받거나 죽지는 않더라도, 그 이후에 상당히 높은 확률로 상처가 덧나며 단독(丹毒), 감염 괴저, 패혈증, 고름혈증으로 수술을 받은 사람이 죽을 확률이 매우 높았던 것이다. 

루이 파스퇴르가 미생물의 존재가 발효와 부패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밝혀내기 전까지, 사람들은 균 (germ)의 존재를 몰랐다. 그리고 이 균이 여러 치명적인 감염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몰랐거니와, 이를 심지어 적극 부정하기 까지 하였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같은 사실 - 즉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생물이 여러 치명적인 원인이 된다는 사실 -이 과대망상이나, 너무 앞서가는 아이디어로 취급 받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영국의 외과의 조지프 리스터 (Joseph Lister)가 외과의로서 성장해 나가며, 루이 파스퇴르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서 현미경으로 환자들의 신체 조직을 관찰해 가며 확신을 얻은 후 외과의 소독법을 정립해 나가고 이를 영국 뿐 아니라 유럽 대륙, 나아가 미국에까지 보급시켜 나가는 과정을 자세히 알려 주는 책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취법이 수술에 큰 혁신을 가져왔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소독법'이 사실은 그 이상으로 외과 수술에 지대한 영향을, 사실은 더욱 큰 혁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리스터의 인생은 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설득하고, 강연을 통해 젊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또 실제 스스로의 임상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삶이었다.
 
그러한 와중에서 다행히도 리스터는 외과의로서 훌륭한 직업적 성취를 거두게 되고, 여왕의 수술마저 성공시키면서 확고한 권위를 형성한다. 존경받는 외과의라는 권위 하에서도 리스터는 자신의 발견과 그에 대한 확신을 권위나 정치로 밀어붙이기 보다는, 계속해서 교육과 임상 결과를 꾸준히 알리고, 때로는 자신을 가장 심하게 모욕하고 자신의 발견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발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곳에 찾아가서 강연을 하는 용기를 통해 확산시키려 애쓴다.
 
재미있는 건 리스터의 발견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한 곳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의 외과의들이라는 점이었다. 남북전쟁을 통해 수많은 임상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미국 특유의 실용주의적 성향에 비추자면 소독법을 무작정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그토록 적극적으로 반대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다. 미국에서도 이정도 반응이었다면, 사실 소독법이라는 게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허황되고 미신적으로 들렸을지 약간 상상이 되기도 한다. 여전히 현재의 현실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외과 수술에서 감염을 막기 위한 소독과 청결 유지 같은 당연한 것이 그토록 배척 받았다는 것이 믿기 어렵지만 말이다.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고 이것이 널리 검증되고 확산되기 전, 많은 정직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상식적'이라고 믿었던 것, 그리고 '옳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오히려 가장 잘못된 방식이며 때로는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가는 원인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충격적이다. 분명 지금 이 순간도, 뭔가 이와 유사한 것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현재 우리의 삶에 있어서 당연하다고 생각되고, 가장 숭배 받고 있는 명제 또한 유연하게 검토하고 되돌아 볼 수 있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아울러 나 스스로도, 너무 현재의 방식과 스스로의 고집에 집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언가에 계속 도전해서 실패만을 반복했다면, 아예 다른 방식, 타인의 방식을 적극 도입해 보면서 실험과 경험, 그리고 실증을 통해 개선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인류의 과학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증명, 그리고 힘든 설득이 필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재미있고 풍부한 내용의 한 권이었다.
 

수술의 탄생 by 린지 피츠해리스, 이한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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