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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s

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by 吉野源三郎 (요시노 겐자부로)

by FarEastReader 2025.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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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수많은 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세계 제2차대전이 한창이던 1930년대 일본 도쿄에서 구제(舊制)중학교에 2학년에 재학 중인 한 남학생의 성장과정을 경험하게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해서 스스로의 관점과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지를 새삼 반추해 보게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코페르군 (혼다 준이치)은 생각이 깊은 소년이다. 법과대학을 갓 졸업한 코페르의 외삼촌은 이러한 코페르군이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 시각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를 바라보기를 희망하며 생각이 깊은 조카에게 코페르군(코페르니쿠스에서 유래한 별명)이라는 별명을 붙여 준다. 코페르군이 학교생활과 교우관계를 통해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에 대해 외삼촌은 코페르군에 대해 편지의 형식으로 여러 코멘트와 생각할 점을 던져준다. 책의 구성 또한 코페르군의 에피소드가 먼저 나오고, 이에 대해 외삼촌이 '외삼촌의 노트'라는 형식으로 코페르군에게 쓴 편지가 나오는 식으로 이어져 나간다.

 

코페르군의 관점은 상당히 순수하다. 딱 잘 자란 부유층 모범생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매우 이상주의적이고, 또 고상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선량함과 지적인 면모는 매력적이기도 하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학생의 투명한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경이롭기도 한 반면에, 불합리한 것이기도 했다. 코페르군은 인간사회의 연대와 공동번영을 믿지만, 한편으로는 그 안의 냉엄하게 존재하는 계급적, 국가적 폭력성과 인간이라는 존재의 필연적인 나약함을 조금씩 맛보고 괴로워 하기도 한다.

 

코페르군이 친하게 지내는 같은 반 친구인 기타미(北見), 미즈타니(水谷), 그리고 우라카와 (浦川)는 각각 다른 계급에 속해 있다. 미즈타니는 최상층, 기타미와 코페르군은 비슷한 상류집안, 그리고 우라카와는 중류이거나 그 보다 살짝 아래인 시장의 두부가게의 아들이다. 1930년대 일본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보면, 중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아마 꽤 유리한 조건의 사람들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엄연히 계급적, 재산적 차이는 존재했다. 이들의 생활 조건 및 거주 환경은 물론 쓰는 말투나 행동거지까지 확연한 차이가 있다. 특히 우라카와같은 중류 이하의 존재는 철저히 상류층 학생으로부터 배제되고 놀림을 받는 대상이기도 했다. 코페르군도 이 우라카와의 집에 가 보고 생생한 충격을 경험하기도 한다. 코페르군의 외삼촌은 이 경험에 대해 코페르군에게 세상에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들의 존엄을 어떻게 배려하고,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코페르군에게 의견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소비하는 자들'이 '생산하는 자들'에 대해 충분한 경의를 표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코페르군도 사실은 '소비하는 자들'에 속해 있음을 일깨운다. 그러나 한편으로, 코페르군과 같은 학생은 '소비만 하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다고 하며 그것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숙제를 남긴다.

 

코페르군은 이 숙제에 대한 답을 어렴풋하게 나마 짐작하게 된다. 이 소설 전체를 읽는 내내 답이 제시 되지 않아 의문으로 남았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매우 다양할 수 있겠으나, 결국 학생들, 즉 미래 세대를 짊어질 청소년층이 결국 소비만 하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닐까 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코페르군은 학교에서 군국주의와 국수주의에 경도된 운동부 상급생들이 약간 저항적인 태도인 기타미군에 대해 고깝게 보고 있으며, 언젠가 손봐 주겠다는 소문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코페르군은 다른 친구인 미즈타니 및 우라카와와 함께 만약 기타미군이 선배들에게 맞게 된다면 함께 맞서 싸워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하지만 정작 실제 일이 일어났을 때, 약속대로 함께 달려 든 미즈타니나 우라카와와 달리, 코페르군은 비겁하게 군중 속에 숨어 앞에 나가지 못한다. 이 일은 코페르 군의 가슴 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스스로의 비겁함에 좌절하게 만든다. 결국 이로 인해 끙끙 앓게 되고, 병상에 누워 계속 비겁하고 나약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수많은 변명만을 떠올리던 코페르군은 어머니와 외삼촌의 조언을 통해 결국 스스로의 비겁함을 인정하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배신을 사죄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기타미군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이 에피소드를 계기로 다시 우정을 회복하는 과정은 매우 생생하고 또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코페르군은 기본적으로 인간사회의 연대와,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교류, 그리고 협력을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일련의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 그 연대, 교류, 협력이 꼭 아름다운 조화만으로 이루어 진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가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코페르군이 보는 세계는 한없이 희망적이다. 전쟁이 격화되고,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모순이 격화되는 가운데에서 여전히 코페르군은 앞으로 다가올 도쿄 대공습이나 일본의 패전, 그리고 완전히 새로이 자본주의적, 물질주의적으로 변해 나갈 일본 사회를 예견하지 못한 채, 사려깊고 성숙한 청년으로 자라나고 있다. 

 

이런 코페르군이 병상에서 일어나 어머니에게 받은 노트에 외삼촌에게 보낼 글을 작성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결말을 맺는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인간의 내면의 성숙과 성장은 정말이지 많은 자원과 성숙한 어른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슬픈 사실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편으로 공부와 경쟁에만 내몰리거나, 의미없는 입시경쟁과 돈만을 우선시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성장 기회가 완전히 박탈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그저 내몰리듯 자라나는 지금의 세대는 어쩌면 군국주의 일본제국 시절의 청소년들보다 더욱 위험하고 협소한 사상만을 주입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

<Translation in Japanese>

 

人はどのように成長していくのか。この問いに対して、私たちは実にさまざまな答えを思い描くことができるだろう。本書は、第二次世界大戦が激しさを増していた1930年代の東京を舞台に、旧制中学校に通う一人の男子生徒の成長過程を描きながら、私たちがいかにして自分自身の視点や価値観を形成していくのかを、改めて考えさせてくれる作品である。

 

主人公のコペル君(本名:本田潤一)は、思慮深い少年だ。法学部を卒業したばかりの叔父は、彼が偏見にとらわれず物事をありのままに見つめてほしいと願い、「コペル君(コペルニクスからら由来したあだ名)」というあだ名を授けた。コペル君が学校生活や友人関係の中で経験するさまざまな出来事に対して、叔父は手紙の形式でコメントを送り、考えるきっかけを与えていく。本書は、コペル君の日常が描かれた後、その出来事に対する「叔父さんのノート」という形式の手紙が続くという構成になっている。

 

コペル君の視点はきわめて純粋である。裕福な家庭に育ち、模範生らしい目で世界を眺めている。理想主義的であり、品位を備えている。その誠実さや知的な姿勢は、読者にとっても魅力的に映るだろう。彼の澄んだまなざしで見た世界は、時に驚きに満ちており、同時に不合理でもある。彼は人間社会における連帯や共存を信じているが、やがてその中に厳然と存在する階級的・国家的な暴力や、人間の本質的な弱さを少しずつ知り、葛藤と苦悩に直面していく。

 

コペル君が親しくしている同級生の北見、水谷、浦川は、それぞれ異なる社会階層に属している。水谷は最上層、北見とコペル君は上流階級、そして浦川は中流もしくはそのやや下にあたる、商店街の豆腐屋の息子である。1930年代という時代背景を踏まえれば、中学校に通えるというだけでも社会的には相当に恵まれた層であることは想像に難くない。しかし、その内側にもはっきりとした経済的・階級的格差が存在していた。彼らの生活環境や住まい、話し方や身のこなしにまで違いが表れており、特に浦川のような中流以下の生徒は、上流階級の生徒から排除され、嘲笑の的にされていた。コペル君も浦川の家を訪れることで、その現実に衝撃を受けることになる。

 

この経験を受け、叔父は彼に対して、世の中には多くの貧しい人々が存在すること、そして彼らの尊厳にどのように心を配り、どう接するべきかを語る。また、「消費する者たち」が「生産する者たち」へ敬意を払っていないという現実を指摘し、コペル君自身も「消費する側」に属していることを自覚させる。とはいえ、彼のような学生たちは単なる「消費者」ではなく、何か本質的に重要なものを生み出しているのだと語り、それが何であるのか、自分の力で考えるよう課題を投げかける。

 

コペル君は、その問いに対する答えを、かすかに想像し始める。物語の中で、その答えが明確に示されることはない。しかし読み進めていく中で、私たちは次第に気づくようになる。学生たち、すなわち未来を担う若者たちは、表面的には「消費者」であっても、無意識のうちに「未来への希望」というかけがえのないものを生み出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ことに気づかされるのである。

 

物語の後半、軍国主義や国粋主義に染まった運動部の上級生たちが、反抗的な態度をとる北見君に目をつけ、「いつか懲らしめる」と噂する場面がある。これを耳にしたコペル君は、水谷、浦川と共に「もし北見君が暴力を受けるようなことがあれば、自分たちも一緒に立ち向かおう」と約束する。しかし、いざそのときが訪れたとき、水谷と浦川は勇気を出して行動するものの、コペル君は恐怖に負けて群衆の中に身を潜め、動く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の出来事は彼の心に深い傷を残し、自らの臆病さに打ちのめされる結果となる。この件の結果、彼は体調も崩してしまい、病床に伏しながら、彼は言い訳ばかりが頭をよぎり、自己嫌悪に苦しむが、母と叔父の助言を受けて、自分の弱さを受け入れ、北見君に謝罪の手紙を書く決意を固める。友情を取り戻していく過程は非常に生き生きと、そして感動的に描かれている。

 

コペル君は、人と人との交流や協力、連帯を信じている人物である。しかし、上述の出来事を通して、それらが必ずしも美しい理想だけでは成立しないことに気づき始める。それでもなお、彼の目に映る世界は、限りなく希望に満ちている。時代は戦争の只中であり、朝鮮をはじめとした植民地では日本帝国主義の矛盾が深まりつつあったが、彼はまだ数年後に訪れる東京大空襲や敗戦、そして戦後の急激な資本主義的・物質主義的な社会変化を知らず、思慮深く成熟した青年へと成長していく。

 

病床から回復したコペル君が、母から渡されたノートに叔父への手紙を書く場面をもって、本書は幕を閉じる。この物語を通して痛感したのは、人間の内面の成熟や成長には、多くの資源と、成熟した大人の存在が不可欠であるという厳しくも切実な現実だった。そして、今の社会では、学業や競争に追われ、意味のない受験戦争と金銭至上主義の中で、こうした「成長の機会」が根こそぎ奪われてしま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懸念が頭を離れなかった。人はどう生きるべきかという問いに向き合う余裕もなく、ただ押し流されるように成長していく現在の若者たちは、もしかすると戦時中の少年たちよりも狭く、危うい価値観しか与えられていないのではないか――そんな深い思いが、心に強く残った。

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by 吉野 源三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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